미국 이민 20여 년 만에 대구에 온 한 지인은 "너무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 통 모르겠네"라며 아쉬워했다. 광주에서 이사와 한 10년 살았던 터라 제2의 고향으로 여겨 그리워했다는 그녀는 기억 속의 풍경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왜 아닐까. 단지 1, 2년 아니 두어 달 정도만 떠났다 돌아와도 그새 또 바뀌는 게 요즘 우리네 도시들이다. 일 년 내내 뭔가를 부수고 새로 짓는, 언제나 공사 중인 도시가 한둘이랴. 몸담고 사는 우리조차 어느 날 문득 낯설어진 거리 모습에 "아니, 대관절 어디야?"하는 소리가 튀어나올 때가 적지 않다.
여기저기 하늘이 낮다고 치올라만 가는 아파트 단지가 도시를 점령하는 사이 주택가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작고 나지막한 집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한뼘의 꽃밭일망정 흙냄새 맡을 수 있는 주택들이 사라지면서 골목길들도 함께 떠나가고 있다.
얼마전 대구 비산동의 한 주택가에 갔다. 거긴 아직도 요리조리 골목길들이 꽤 남아 있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다란 길들도 많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만한 골목길 안의 아주 쪼끄마한 어떤 집은 아예 대문을 열어놓고 산다고 했다.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 많던 골목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좁고 꾸불꾸불하며, 끊어지는가 하면 또다시 이어지곤 하던 길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함께하며 세월을 보내온 늙수그레한 골목길들이 그립다. 숨바꼭질하던 꼬마들의 웃음소리, 누군가의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들창 사이로 들려오던 부부들의 티격태격거리는 소리, 떨리는 가슴으로 오가던 '그집앞'의 추억이며, 텅 빈 한낮의 적막함까지 오롯이 배어있는 곳. 봄이면 수수꽃다리 향내가 번져나가고, 저녁나절이면 고등어 굽는 냄새가 맹렬히 침샘을 자극하던…. 사람내음 물씬 나는 골목길을 보기 어려워졌다는 게 슬프다.
재개발의 명분 아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주택과 골목길들이 사라져갈지…. 지구촌 수많은 관광객들은 일부러 유럽 도시들의 오래된 골목길을 찾아나서는데 우리는 되레 옛 골목들을 마구잡이로 없애고 있다. 도시 전체가 온통 삐죽삐죽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들로 뒤덮여버린다면, 그래서 모세혈관 같은 정겨운 골목길들이 사라져간다면…. 아무래도 악몽이다.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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