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한자로 불(佛)이라고 쓴다. 한자의 불(佛)은 원래 '아니다'라는 뜻을 지닌 문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부처님을 가리키는 불(佛)은 사람(人)이면서도 사람이 아닌(佛) 존재인가 보다.
또 부처나 불(佛)이라는 말이 범어의 부다(佛陀)에서 온 것임은 다 아는 얘기다. 그 참뜻은 '눈 뜬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까 불교란 곧 '눈 뜬자의 가르침'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거리에는 가로수를 따라 연등이 내걸린다. 이 연등은 낮이면 5월의 신록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색색의 풍경을 연출하고, 밤이면 무명을 밝히는 불빛으로 세속의 어두운 번뇌를 밝혀준다. 언제부터인가 부처님 오신 날 거리에 늘어선 연등은 이제 이 풍진 거리를 지켜주는 장관의 풍물시(風物詩)가 됐다.
석가여래의 깊은 진리와 큰 뜻의 자비를 우리네 범인이 다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오인(悟人)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그의 깨달음을 어찌 밝혀볼 수 있으랴. 그러기에 깨달음이란 세속의 우리에게는 영원한 미답의 경지로 남아있고, 미오(迷悟)의 우리에게는 그렇게 남아 있음이 오히려 다행스런 미래의 여지가 아닌가 싶다.
불심을 갈고 닦아 제세구도(濟世求道)의 길을 정비하는 것이 불교 개혁의 과제이다. 걸핏하면 벌어지는 종정다툼이나 잿밥싸움은 이제 청산하고 무소유의 청정수행을 통해 스님들은 대낮에도 한 치 앞을 종잡을 수 없는 중생들의 눈 먼 삶을 이끌어주는 스승으로서 빛과 깨달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비쳐지고 있는 불교는 결코 곱지만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눈 뜬자의 가르침'을 잃고 있는 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눈 뜬 소경'이라고 하고 '까막눈'이라고도 한다. 반대로 글자를 익히면 '눈을 떴다.'고 한다.
오늘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문자를 모르는 문맹자(文盲者)는 거의 없으나 자기 삶을 읽지 못하는 생맹자(生盲者)는 너무도 많지 않을까. 아무튼 석가탄신일을 맞아 자비로운 부처님은 예나 지금이나 빙그레 웃고만 계신다. 부처님의 고행을 스스로 실천하고 깨닫는 자와 부처님의 이름을 미끼로 삼는 자들을 함께 말없이 바라보면서 말이다.
김정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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