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 전략산업 로드맵 '불협화음'…각자의 주장은?

입력 2007-05-14 10:33:30

대구시 및 대구전략산업기획단과 섬유업계가 3단계 지역전략산업육성 로드맵(RIRM)의 섬유부문 계획에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부문은 산업용 섬유소재 비중과 지원예산 규모이다. 예산 규모에 대해서도 섬유업계는 4천여억 원을 제기했지만 바이오, 나노 등 전체 RIRM 국비 지원이 4천억 원을 넘기 힘들어 산업부문별 배분을 두고 불협화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시와 업계 등 관계 기관의 주장을 들어 본다.

○…함정웅 한국염색기술연구소 이사장

3단계 '섬유산업발전 로드맵(RIRM)'은 문제가 있다. 업계가 분노하는 것은 니트나 날염, 천연섬유 등 세분화돼 있는 의류용 섬유를 '죽음의 계곡'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특히 기획단은 기존의 섬유 연구기관들의 참여를 배제시킨 채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업체와 대학의 산학협동을 통한 하이테크 산업용 섬유 기술개발 계획을 세웠다. 이는 섬유산업에 대한 지원을 줄이기 위해 의류용 섬유를 전공한 교수들이나 연구원, 업계 CEO 등을 배제하고 다른 전공의 교수들과 연구원들을 통해 만든 결과다.

대구의 산업용 섬유는 무척 열악하다. 미국에는 듀퐁이, 일본에는 도레이라는 세계적인 원사 업체가 존재한다. 이들 업체들이 각종 원천기술을 가지고 원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산업용 섬유가 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에는 아직 다양한 원천기술을 보유한 원사업체가 없다. 이런 환경에서 산업용 섬유로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기계부품 산업이 최근 섬유산업을 앞질렀다고 해서 대구를 섬유도시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은 잘못이다. 이탈리아 밀라노도 기계나 화학공업이 섬유보다 규모가 크지만 세계적인 섬유패션도시로 유명하다. 일본 고베도 마찬가지다. 고베는 20년 전부터 패션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고베 하버랜드'를 만들었고 다양한 건축물을 지었다. 또 기계부품산업이 전체 산업의 70%가 넘는데도 섬유 대기업들을 유치해 섬유를 살리고 있다.

대구시는 메카트로닉스나 모바일, 바이오, 나노 등을 육성한다고 하는데 불확실한 분야에 올인했다가 그것마저 중국에 덜미를 잡힐 수도 있다. 한미 FTA 최대의 수혜자가 의류용 섬유라고 한다.

섬유업계는 스스로 섬유산업 발전방안을 마련하고 RIRM의 잘못된 방향을 잡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만든 것이다. 섬유산업이 바이오와 IT, 나노 등과 융합하면 충분히 성장형, 미래형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고 현재 범용 섬유는 자동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조만간 구체적인 발전 방안을 내놓겠다.

○…이정인 대구시전략산업기획단장

지역산업발전 로드맵(RIRM)은 정부가 지역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펴는 정책으로 지원 예산의 80%가 정부 재원으로 진행돼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이다. 성급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 정부는 지역 섬유산업에 10년간 지원했지만 기대만큼의 성과가 없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우리 섬유 비중은 의류용과 산업용이 8대 2의 비율이다. 선진국 수준인 5대 5 비율로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방침으로, 대구의 섬유부문 RIRM도 산업용 소재로 비중을 높여가야 한다. 정부의 신뢰없이는 3단계 사업예산을 확보할 수 없다.

일본 후쿠이현의 경우 대기업 하청공장이 많아 중소기업 위주의 대구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업체들은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중국의 중저가 제품에 밀려 섬유산업이 침체 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주력부문을 산업용 소재로 전환하고, 원사업체와 중소가공업체의 협력시스템이 무너지면서 하청업체들은 불가피하게 산업용으로 구조개선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중소업체들이 산업용 소재생산으로 탈바꿈해 재도약하고 있다. 일본 섬유업계는 산업용을 주력으로 하면서 의류용은 고급·고기능성으로 완전히 구조개선했다.

우리 섬유업계의 환경은 중·저가는 중국, 인도 등에 밀리고 고급 의류용 시장은 미국, 일본에 밀리는 '넛 크래커'신세다. 또 다품종 소량생산과 고기능성 제품 생산기술도 뒤처진다. 그렇다면 지역 업체들의 갈길은 자명하다. 대기업과의 새로운 수직 계열화를 이루거나, 대기업의 지도·협력하에 일부 업체들은 산업용 소재로 전환하고 또 다른 업체들은 고급 의류용 생산으로 방향을 돌려야 할 것이다.

RIRM이 의류용을 포기하거나 산업용으로만 간다는 것이 아니다. 산업용으로의 문(門)을 열겠다는 것이다. 원천기술이 없는 지역 중소기업들이 산업용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기업과의 계열화나 협조가 필수적이다. 대기업은 기술지도, 금융지원에 앞장서고 양쪽이 함께 연계사업 발굴, 제품다각화, 품질향상, 가격절감 등의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없다면 '백약이 무효'다.

○…이의열 (주)덕우실업 대표

시와 기획단이 내놓은 RIRM은 바람직하다고 보며 섬유인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런 중장기 방안이 좀 더 일찍 만들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일부에서 '정부가 산업용 섬유 비중을 너무 갑자기 올리려고 하지 않느냐'는 부정적인 견해가 있지만 지역 섬유업계가 너무 의류용에만 집착하다보니 산업용 섬유에 대한 투자와 정보가 없었다. 의류용과 산업용은 큰 테두리로 보면 별개가 아니다. 의류용을 좀 더 세분화한 것이 산업용이고 의류용은 앞으로 하이테크 섬유로 전환하면 된다. 대구는 화학섬유에 대한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정부지원을 받아 산업용을 접목시키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 각 섬유 연구기관들도 필요하다면 설비 등을 보완하면 된다.

또 산업용 섬유로 전환을 하기에는 지원 예산이 적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1960, 70년대를 생각해보라. 당시 우리 섬유산업은 중국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우리는 지금처럼 섬유산업을 키웠다. 과거와 비교할 때 훨씬 좋은 환경이다.

정부에 아쉬운 점은 1, 2차 밀라노 프로젝트를 지원해놓고 너무 성급하게 성과를 바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업은 개별 중소기업들이 할 수 없었던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성과를 기대해야 한다.

섬유업계도 반성해야 한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나 한국염색기술연구소 등 각 섬유 연구기관을 잘 찾지도 않으면서 성패를 논하거나 비난만 하는 섬유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직접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각 연구기관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어떻게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한 예로 섬유개발연구원에만 가도 좋은 원사들을 많이 개발해놓았다. 업체들이 적극 이를 활용해야 한다.

최근 업계 자체적으로 구성한 '대구·경북섬유산업 신구조혁신 위원회'와 RIRM을 주도하고 있는 전략기획단을 대치시켜 마치 갈등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혁신위는 전략기획단의 방안을 조율하고 협력하기 위한 것으로 전략기획단의 대안 조직은 아니다.

○…김철섭 대구시 섬유패션팀장

RIRM은 1·2단계에 걸쳐 구축된 섬유부문의 인프라와 R&D 기반을 바탕으로 지역 섬유산업의 재도약 틀을 짜자는 것이다.

구체화된 지원부문을 설정하려는 정부방침에 따라 '하이테크 섬유소재'로 범위를 좁힌 것이다. 이는 범용 의류의 대량 생산시스템을 벗어나 고기능성 소재개발을 통해 생산품의 고부가가치화를 하자는 것이다.

하이테크 섬유소재는 고기능성 의류소재와 산업용 섬유소재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현재 논란의 핵심은 산업용의 비중문제다. RIRM 초안에는 산업용 섬유 비중을 2017년까지 45% 이상 높인다고 되어 있다. 섬유업계 일각에서는 의류용에 대한 지원이 축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지역 섬유산업에서 산업용 비중이 적다는 것을 들며 비판하고 있다.

섬유산업에 새 활로를 뚫기 위해서는 산업용 비중을 늘려가야 함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나 시가 산업용에만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기반이 약한 산업용 섬유에 대해 1차적으로 R&D 지원을 강화하면서 대규모 자본이 소요되는 산업용 섬유의 특성상 필요한 인프라 등은 추후 별도예산을 확보, 대기업군과 지역의 우수중소기업과의 연계 등을 통해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

지역의 산업용 섬유는 좁게 보면 8~9%대, 넓게 보면 20%에 이른다. 향후 이 비중을 늘려 섬유산업 재도약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정부방침에 부응, 산업용과 의류용의 시너지 효과를 도모할 계획이다.

시는 선도기업 중심의 지원정책을 펴겠다. 1단계가 인프라, 2단계가 연구기반 확충이었다면 3단계는 기업중심의 정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에 있는 3천여 개의 기업을 다 지원할 수는 없다. 그중 투자의욕과 능력이 있는 기업군에 집중투자해 나머지 기업군이 따라오고 상생하는 '기러기 모델'을 생각하고 있다. 현재로는 전 기업의 10% 정도인 300개 기업군을 선도기업군으로 육성하려고 구상 중이다. RIRM이 지역섬유 산업발전의 중요한 한 구성요소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또 현재의 연구기관을 홀대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춘수·전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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