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은 오르기는 힘들지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시야가 트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오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손을 놓으면 그냥 천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맙니다.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다들 편안해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원리주의에 몸을 내맡기는 것은 그 손을 놓는 것과 같습니다. 골짜기로 곤두박질쳐져서 처참한 상태지만, 그러나 그건 절벽을 오르는 사람의 관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작 그 본인은 곤두박질 친 상태가 기분 좋습니다."
이 책은 사람을 겸손케 한다. 절벽에서 떨어진 줄도 모른 채 편안하게 누워서 자신의 말과 행위를 '정답'이라고 믿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절대적 진실을 내세우는 '일원론'적 태도를 경계하게 한다. 누구든지 '일단 일원론에 걸려들었다 하면 강건한 벽 속에서 살게 되며, 벽 건너편이나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선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게 '바보의 벽'이란다.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편견과 위선 그리고 세상의 크고 작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런 벽 때문이며, 이 벽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비로소 인간이나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그렇다면 무서운 것은 바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해부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것을 뇌의 구조적 특성에 빗대어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고차적이지도 고급스럽지도 않으며 다만 정보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계산기'일 뿐이다. 사람마다 각기 현실이 다른 것은 입출력하는 뇌의 계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뇌는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차단해 버린다. 그래서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어떤 욕망이나 집착에 빠진 사람 또한 다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벽'이 그만큼 단단하고 높기 때문이다.
저자는 도시화된 현대 사회를 이미 뇌화(腦化)된 사회라고 말한다. 그것은 의식중심 사회이며 정보중심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정보로 규정한다. 매순간 변화하는 생명체인 자신을 불변의 정보로 파악해 버린다. 이처럼 자신이 변하지 않는다는 뿌리깊은 고정관념이 바로 '바보의 벽'을 조장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활동을 뇌의 구조와 기능을 빌려 설명하긴 하지만 저자는 일반적인 인식 범위에 맞게 사고하고 행동할 줄 아는 '현명함'과 '상식'을 강조한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궁극적인 보편성이라는 것이다.
정보는 지식이 아니며, 지식의 양이 사유의 질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단답과 숫자와 결과를 중시하는 오늘날의 교육은 당연히 사고력을 위축시키며 심지어 사고할 동기조차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젊은이들은 점점 더 '지적 노동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사고의 힘든 훈련 없이는 '절벽'은커녕 그 어떤 것도 올바로 뚫어내지 못한다. 실상은 그게 더 무서운 것이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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