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아버지, 이건 아닌데요"

입력 2007-04-30 10:45:18

요 며칠 사이 우리는 두 사람의 '특별한' 아버지들을 보았다. 한 사람은 부정한 돈을 먹고 유죄판결을 받은 자식을 기어이 국회의원으로 만든 전직 대통령 아버지. 또 한 아버지는 술집에서 시비하다 다친 아들을 위해 회사 경호원들을 동원해 가면서까지 돈의 위세를 보여준 재벌아버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어느 부모인들 두 아버지처럼 자식 일에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민초들의 집안에서나 이해될 수 있는 소시민적 父情(부정)을 말할 때의 이야기다.

한 국가의 정치지도자나 재벌회장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되는 아버지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식을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취직자리 하나 못 챙겨주고 전세 칸 하나조차 못 물려주면서도 아버지의 자리를 꿋꿋이 지킨 이 땅의 수많은 평범한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두 특별한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욕되게 했다.

두 아들은 과연 그런 아버지에게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가졌을까. 만약 그 두 아들이 이런 편지를 쓴다면 특별한 두 아버지는 그들이 무너뜨린 도덕성과 사회정의에 대해 어떤 省察(성찰)을 할까.

"아버지, 제가 드디어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런데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무슨 까닭일까요? 정치인의 으뜸 덕목이 반부패라는데 부패로 유죄선고까지 받은 제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죄지은 녀석이 무슨 낯으로 언감생심 국회의원 꿈을 꾸느냐'고 왜 꾸짖고 말리지 않으셨는지, 이제사 궁금해집니다. 黨(당)에 뚜렷한 공적도 없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공천을 거저 받은 것도 아버지의 옛 부하들이 챙겨 넘겨준 떡고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이 나라의 정치 수준이 舊態(구태)의 수준을 못 넘었다는 비난이 두려울 뿐입니다. 서울이나 경상도에서 뽑혔다면 모르되 아버지가 지어놓은 온실 같은 텃밭 선거구에서 당선된 게 과연 진정한 승리이며 가문의 영광일지도 의문입니다. 사면 후 自肅(자숙)했어야 옳았습니다. 아버지가 진심으로 민주와 정치도의를 제게 가르치시고 싶었다면 부정한 돈을 먹고도 출마하려는 저의 종아리를 쳤어야 옳았습니다. 아버지 저는 당선되고서야 당선 선거구 바깥의 냉랭하고 쓴웃음 짓는 민심 앞에 부끄럽다는 깨침을 얻었습니다. 민주투사로서 자랑스러웠던 아버지의 빗나간 아들 사랑이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버지, 다 큰 사내자식이 대문 밖에서 쌈질하다 때리고 얻어 맞는 건 남자세계의 성장 체험으로 끝났어야 했습니다. '조폭' 같은 싸움질이 잘난 짓은 아니지만 돈의 힘으로 위세 부리는 '돈폭' 또한 잘난 짓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재벌 아들만 귀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보복 폭행'당한 민초들의 아들도 소중한 자식입니다. 아버지 회사의 저 또래 경호원들도 '보복 폭행'이 옳은 일이 아니란 걸 모를 리 없습니다. 그들도 양심과 정의감이란 게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아버지를 따라 힘으로 징벌하러 간 것은 아버지의 명령이 옳아서가 아니라 돈의 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정의도 사회정의도 아닙니다. 한낱 치사한 돈놀음이었을 뿐입니다. 자신은 부패한 권력에게 얻어맞지 않으려고 돈(비자금)을 뿌리면서 나보다 약한 자는 돈의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가진 자의 오만과 비겁함입니다. 그런 삐뚤어진 가진 자의 정의가 이 사회의 불의와 노사폭력 같은 갈등을 낳습니다. 아버지, 이 세상은 아버지 아들만 포시럽게 사는 곳이 아닙니다. 이건 정말 아니네요."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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