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아전인수(我田引水)

입력 2007-04-26 11:33:20

2002년 대선이 있던 해의 1월 1일, 당시 여당의 선두 대선후보는 연희동 전직 대통령의 집에 들렀다가 "골치 아픈 대통령보다는 총리나 하라"는 신년 덕담에 머쓱해진 일이 있다. 말을 건넨 집주인이야 대통령의 짐이 무겁다는 말을 별뜻없이 한 것뿐이고 좌중도 우스개로 여겼지만 듣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기분이 상했을 법했다. 그러나 그 말을 전해 들은 경쟁 후보들은 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한바탕 웃음으로 나쁘지 않은 기분을 표시했다.

그해 선거전이 한창이던 시기 야당에선 '보이지 않는 표'가 화두가 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당 후보의 약세가 전해지고 있었지만 한나라당 지도부는 숨어 있는 100만 이상의 표를 앞세워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각종 수치를 들이대며 어려운 상황을 경고하던 중간 참모들은 제대로 판세를 읽지 못한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나 투표 결과 숨어 있는 표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아전인수란 말은 특히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한다. 한가지 상황을 놓고 저마다 다른 해석과 시각을 쏟아내고 서로를 아전인수라고 힐난한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입니까'라는 논평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대의 진정성 결여를 트집잡기도 한다. 우리말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진정성은 어느새 상대를 공격하는 선봉의 단어가 됐다.

어제 재보선 선거 결과를 놓고 정당마다 제각각 제 입맛에 맞는 해석을 하고 있다. 민의를 겸허히 받아 들인다는 상투적인 말도 물론 빠지지 않는다. 불패신화가 깨졌다는 한나라당에선 지도부의 책임론도 나오고 야당의 기세에 눌려 지내던 여당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며 화색이 돈다.

과학을 비롯한 문화 발전이 폭발적이던 세종 치세 이후 조선의 몰락을 주자학의 위세에 과학기술이 천시됐기 때문이라거나 임금의 능력부족으로 보는 대신 정치적 배경 탓이라고 보는 어느 사학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세종대의 사회 문화 발전은 바로 아버지 태종이 재위 18년간 수많은 정적을 숙청하고 주변을 정리해 정치적 안정을 선사한 덕이라는 해석이다. 처남과 사돈의 목숨마저 빼앗으며 임금 옆의 연결고리를 없애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제 선거에서 나타난 무소속의 약진을 서로 내가 잘났고, 내가 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아전인수에 대한 거부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서영관 북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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