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백자] ②어떤 도자기인가(하)

입력 2007-04-25 07:54:56

광물질 유약 입혀 단 한번 만에 구워낸다

◆광물질 유약 사용에 초벌구이 백자

조선시대 왕실이나 관청에서 사용된 '분원 도자기'가 도화서(圖畵署)의 화공들을 불러 격조 높은 그림을 그려 넣은 데 비해, 지방의 민요 도자기들은 아예 그림이 없거나 간혹 그림이 들어간 것도 '그냥 두려니 밋밋하니까' 도공들이 손 가는 대로 그린 간략한 문양이 대부분이다.

청송백자 마지막 사기대장 고만경 옹은 "청송백자도 다른 지역의 민요 자기와 다를 바 없이 그림이 없는 순백자이거나 그림이 있더라도 풀잎 한두 잎 그린 초문(草紋)이나 '福'(복)자 도장을 찍는 것이 전부였다."면서 "그나마 문양을 넣는 것도 병, 단지, 면기(麵器), 반상기와 일부 고급 밥그릇에 국한되었으며 사발, 대접, 접시와 제기류에는 넣지 않았다."고 했다.

도자기의 유약은 대체로 초목(草木)재에 장석·규석 성분 등의 광물질을 혼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청송자기도 초기에는 초목재를 사용하였으나 종래에는 법수광산 옆과 인근지역에서 나는 '회돌'과 '보래'라는 광물질을 각각 2대 8의 비율로 섞어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모든 백자는 초벌구이 이후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청송백자는 성형, 건조 후 유약을 입혀 단 한 번 만에 백자를 구워낼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기대장 고만경 옹의 증언에 따르면 "보통 점토는 초벌구이 전에 유약을 입히면 그릇이 물에 풀어진다. 건조 강도를 높이더라도 수분의 흡수력이 그만큼 강해지기 때문에 더 빨리 녹아내리는 성질이 있다. 그렇지만 청송백자는 건조 강도를 높이면 풀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초벌구이 전에도 유약을 입힐 수가 있다."고 했다.

또 성형 후 그릇의 건조와 관련해서도 "청송백자는 움집 안 온돌 위에서 열을 가하는 음건법을 썼다."며 "보통 그릇을 급속하게 건조시키면 그릇 외부가 먼저 말라 표면의 공기구멍이 닫혀버리기 때문에 내부의 수분이 증발할 수 없어 그릇이 파손되기 쉽지만, 청송백자는 급속 건조에도 파손되는 일이 없었다."고 밝혔다.

◆독특한 기물 소성과 가마축조 방법

청송백자는 기물(器物)의 소성과 가마축조 방법도 독특했으며 그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완전 건조된 그릇을 가마에 넣을 때 대부분 백자가마에서는 바닥에 모래를 까는 경우가 많은데, 청송가마에서는 도석(陶石)을 빻은 후 남은 사토 찌꺼기를 깔았다.

그 위에 기물을 쟁일 때도 다른 지역에서는 그릇이 서로 붙지 않도록 '비짐이 눈'을 붙여 포개쌓는데 비해 청송백자는 같은 크기의 그릇들을 '입+입+굽+굽' 형태로 맞포개 쌓았다.

해방되던 해에 시집와서 오늘날까지 법수광산 옆에 살고 있는 박갑순(84·여·청송군 부동면 신점리) 씨에 따르면 "농사일손이 한가할 때는 옆에 있는 법수공방에서 날품을 팔았는데, 널빤지에 10개 정도 놓인 그릇을 사기굴로 옮겨 넣어주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때 안에서 그릇을 받아 쌓는데 바닥에 국그릇을 하나 반듯하게 놓으면 그 위에 입을 맞대어 국그릇을 놓고 다시 위에 사발을 놓는데 국그릇이나 사발이 굽의 크기가 같아 천장에 닿을 때까지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가마 쟁임법 때문에 후기의 청송백자는 입언저리나 굽바닥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아 맨살이 드러난다.

가마 축조방식에 있어서도, 문경이나 합천의 경우 보통 경사 10~15도 정도이며 옹기가마의 경사도가 25도 정도인데 비해, 청송백자 가마는 경사가 40도 내외가 되는 급격한 산비탈에 축조했다. 이는 불을 지폈을 때 열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감안해 열효율을 높이기 위한 고안이었다.

또 가마의 형태도 사다리꼴로 아궁이쪽 칸이 작고 뒤쪽으로 갈수록 크게 만들었다. 5칸짜리 가마의 경우 첫 칸에 비해 다섯 번째 칸은 2.5배 정도 크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가마구조는 수세기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연료를 극도로 절약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되어 왔음을 알려준다.

사기대장 고만경 옹은 "다섯 칸 가마의 경우 문경이나 합천가마는 초벌·재벌구이에 보통 20~27시간 또는 그 이상 걸린다는데 청송은 10시간이면 구워낼 수 있었다."면서 "다른 곳에서는 '지핌불'이라고 해서 가마를 예열한 후 차츰 온도를 높여야 그릇이 주저앉지 않는 데 비해, 청송은 그릇이 얇고 완전 건조시킨 것을 넣기 때문에 수분이 거의 없어 가마 불을 급작스레 높여도 내려앉지 않는다."고 말한다.

청송백자가 여느 백자와 달리 전 과정이 독특하게 발달되어 온 것은 도자기 원료로 쓰이는 도석(陶石)의 특이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 도자기 제작에 사용된 도구나 문양, 소성법 등은 옹기제작 기법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다른 지역의 백자에 비해 청송백자는 민요자기 특징을 고스란히 대물림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송백자 지표조사에 참가했던 안동대 배영동(47·민속학 전공) 교수는 "오늘날 도자기의 원료나 제작기법이 획일화되어 지역의 특성을 살린 그릇이 사라져가는데, 청송백자가 재현될 경우 원료나 기술이 희석되지 않아 지방색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공예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현재 청송백자 마지막 사기대장이 비록 연로하지만 생존해 있으므로 기술을 전수하고 복원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할 것"이라면서 "중앙정부도 이런 지역문화를 계승 발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충진·김경돈·조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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