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출렁이는 바다, 그 거친 파도가 맹수 떼처럼 몰려다니며 허연 이빨로 통통배 뱃전을 물어뜯습니다. 흔들리는 갑판 위로 하늘이 기우뚱거리고, 늙은 어부 서넛이 뱃전에 몸을 의지한 채 필사적으로 그물에 매달립니다. 어기차! 어기차! 어부들의 팔다리 근육 운동에 이끌려 올라온 바다, 그물 안에 사백어 떼가 서로 뒤엉키며 발버둥칩니다.
한바탕 바다와의 전투를 끝낸 어부들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갑판 위에 빙 둘러앉습니다. 그리고 금방 건져 올린 사백어를 한 바가지 떠서 초고추장이 담긴 그릇에 넣자 미꾸라지처럼 생긴, 그 유리처럼 투명한 사백어들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칩니다. 그 몸부림이 스스로 매운 초고추장을 뒤집어쓰고 죽어가는 일인 줄도 모르고. 그 순간 리포터가 한 어부에게 마이크를 갖다대자 "지눔들도 살라꼬 꿈틀대는 거 아입니껴. 그라모 손 안 대고 코푸는 맹키로 요리하는 수고를 덜지예." 라며 주름진 얼굴에 함빡 웃음을 그립니다. 또 한 어부는 카메라를 향해 매운 초고추장 덩어리가 되어 젓가락 끝에서 파닥이는 사백어를 쳐들고 "꼬물거리는 것이 사랑시럽네요."라는 말씀까지 덧발라 입안으로 우겨 넣고는 질겅질겅 씹으며 엄지손가락을 내밉니다. "이 맛, 증말로 끝내주니더."
최근 TV에서 본 어느 방송사의 맛 기행 프로그램 장면입니다. 이 풍경들을 사백어의 입장에서 진술하면 그물에 걸려 물 밖으로 내던져진 상황부터 대명천지의 날벼락이며, 초고추장 그릇 속은 죽음의 가스실이며, 히히덕거리는 어부들의 말은 지옥의 동굴에서 왕왕 울려나오는 저승사자의 목소리쯤 되지 않을까요? 인간들의 맛 기행이 그 미물들에게는 '임진왜란'이며 무자비한 '양민 학살'이지요.
생명의 근원적인 특성은 폭력이라고 한 김용석 교수의 말이 생각납니다. 생명을 얻어 탄생한 모든 개체는 저마다 삶에 대한 의지가 필사적이며, 그 의지의 발현은 다른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생명체를 대할 때는 아름다움, 그리움, 사랑… 등의 미학적 인식보다는 우선 진정으로 조심하고 또 세심하게 배려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요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폭력에 대한 예방교육도 이처럼 생명에 대해 조심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는 데서 출발해야겠지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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