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절충…혜택엔 모두가 불만
지난주 여야가 합의한 국민연금 개혁안이 이번주 처리될 전망이다. 하지만 바뀌는 방향이 가입자들에게 달가운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내는 현재의 보험료로는 연금 지급액을 감당할 수 없는 만큼, 노후에 받게 될 연금지급액을 현재보다 크게 낮춰야 한다는 것이 여야가 설명하는 제도 변경의 이유다.
연금축소 소식을 들은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고 묻고 있다. "꼬박꼬박 내는 국민연금, 과연 내 노후의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연금이 아니라 용돈(?)
바뀐 제도를 보면 국민연금은 연금으로서의 역할을 갈수록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후에 받게 될 연금수령액을 크게 낮춤으로써 '국민 용돈'으로 변질됐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야가 지난 19일 합의한 내용을 보면 가입자가 내는 돈(월 소득의 9%)은 그대로 뒀지만, 60세가 넘었을 때(국민연금은 10년 이상 가입했을 때 60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준다) 받을 수 있는 돈을 20% 줄였다. 현재는 월소득의 60%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지만, 국민연금법이 개정·시행될 내년부터 신규가입하는 국민들은 국민연금 수령액이 40%로 뚝 떨어지게 됐다.
이에 따라 법개정 이후 신규가입자가 내년부터 25년간 보험료를 냈다고 가정했을 때 월소득 100만 원의 A씨는 현재 제도대로라면 노년이 됐을 때 49만 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이제 제도가 바뀜에 따라 33만 원으로 줄어든다.
A씨처럼 25년간 납부했을 때 월소득 200만 원의 B씨가 내년부터 신규가입한다면 현재 제도하에서는 67만 원을 받을 수 있지만 바뀐 규정이 적용될 경우, 45만 원으로 연금액이 감소한다.
이들의 연금을 살펴보면 A씨의 연금액은 보건복지부 발표 최저생계비(43만 원)보다 훨씬 더 적고, B씨의 연금액도 최저생계비 수준이다. 중소제조업체가 많은 대구경북지역 봉급생활자들의 월평균 급여가 200만 원을 넘기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을 아무리 열심히 내도 노후에 받는 연금은 '쥐꼬리'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미 국민연금에 가입해서 꼬박꼬박 보험료를 부어온 가입자는? 지금까지 낸 보험료에 대해선 현행 제도를 적용, 연금액을 산정하고 법 개정 이후에는 바뀐 기준에 따라 연금 수령액이 결정된다.
이에 따라 월소득이 200만 원인 국민연금 가입자 C씨가 15년간 보험료를 냈고, 앞으로 10년간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면 제도가 바뀌지 않았을 경우, C씨는 67만 원을 받지만 제도변경으로 인해 연금액이 58만 원으로 줄어든다. 300만 원 소득을 올리는 D씨는 87만 원에서 76만 원으로, 100만 원을 버는 E씨는 49만 원에서 43만 원으로 수령액이 내려앉는다.
◆왜 이런 일이?
국민연금은 하루 800억 원씩 연금 부채가 쌓이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47년에는 가입자들에게 연금을 줄 수 없는, 즉 연금기금 고갈사태가 예상되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의 부실이 더 이상 현행 제도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국민연금은 부실이 커져만 갈까? 현재 가입자들이 월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노후에 종전 월소득의 최고 60%까지를 보험금으로 매달 연금으로 내준다는 구조가 당초부터 불합리했다고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설명하고 있다. 국민연금 도입 당시 실현이 힘든 '장밋빛 제도'를 만들었으며, 결국 운용과정에서 치명적 손실을 낳고 있는 것.
국민연금관리공단 한 관계자는 "공무원연금은 가입자들이 월소득의 17% 안팎을 보험료로 내는데 비해 국민연금은 그 절반밖에 안 되는 보험료만 받고 있다."며 "더욱이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배우자에게 유족연금까지 지급하는 등 모이는 보험료에 비해 혜택이 지나치게 많아 기금운용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여야가 합의한 국민연금제도 개정방향은 '덜내고 더받는' 근본적인 시스템 문제는 치유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정을 했지만 '덜내는' 구조는 전혀 손대지 못한 것. 여야는 현재 월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는 제도는 현행대로 유지시켰다.
이렇게 되면 당초 예상되던 2047년엔 연금 기금이 고갈되지 않지만, 결국 2061년에 가면 또다시 고갈 우려가 나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여야 합의가 국민연금의 근본적 치유는 못하고, 연금 고갈 시기만 10년여 늦췄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향후 국민연금의 운용적자가 커지면 정부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고, 국민들의 세부담이 더욱 늘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소득수준이 낮은 65세 이상 노인들(전 노령 인구의 60%가량이 해당될 것으로 보임)에게 월평균 소득액의 5%를 내년부터 매달 연금으로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2028년부터는 10%로 증액)도 도입할 예정이어서 국민 세부담은 가파르게 늘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6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국민연금 외에 노령연금(지급률이 5%면 월 9만 원)도 받게 되지만 연평균 4조 4천억 원 이상의 정부 재정이 필요하게 돼 봉급생활자 등의 세금부담률이 더욱 늘 것으로 우려된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들은 "노인인구 증가로 국민연금의 혜택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고, 기초노령연금도 2050년쯤에는 251조 원 이상의 정부 재정 투입이 불가피해 정부안대로 시행되기는 힘이 들 것"이라며 "결국 정부 시행 노후 대책에 노년을 기댄다는 것은 불가능해졌으며, 수익률 높은 금융상품 가입 등 별도의 노후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국민연금 계산법: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와 가입기간 등에 따라 결정된다. 내 연금을 알아보고 싶은 가입자는 국민연금 홈페이지(http://www.nps4u.or.kr)에 들어간 뒤 '내 연금 알아보기'를 클릭, 공인인증 확인을 거치면 자신의 예상연금을 조회할 수 있다. 공인인증 절차가 번거로우면 공인인증 없이 예상연금을 모의계산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나 현재 제공되는 계산방식은 국회에서 진행중인 법 개정 내용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향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유념해야한다.
▶내는 돈(보험료)은 그대로
9%(현행)→9%(여야 합의안)
▶받는 돈은 축소
60%(현행)→40%(여야 합의안)
▷기존 가입자의 경우(15년간 냈고, 향후 10년간 더 낼 때)
월소득이 100만 원(49만 원→43만 원)
월소득이 200만 원(67만 원→58만 원)
월소득이 300만 원(87만 원→76만 원)
▷신규 가입자의 경우(내년부터 25년간 낼 때)
월소득이 100만 원(49만 원→33만 원)
월소득이 200만 원(67만 원→45만 원)
월소득이 300만 원(87만 원→58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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