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효목도서관 녹음 자원봉사자 모임 '소리향' 회원들
영화까지 만들어진 레몽 장의 소설 '책 읽어주는 여자(La lectrice)'에서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꽁스땅스'(34)는 휠체어를 탄 소년과 노부인, 외로움에 시달리는 남자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한다. 그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전쟁과 평화' 등의 소설을 읽어주면서 고독과 외로움에 지친 이들에게 빛과 소리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이런 '책 읽어주는 여자'들을 대구 효목도서관에서 만났다.
이들은 시각 및 독서장애인들로부터 읽고 싶어하는 책을 요청받아 녹음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소설처럼 직접 집을 방문해서 읽어주지는 않는다.
"녹음하는 건 좀 쉬운 줄 알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더군요." 오춘희(44) 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일을 시작한 초보봉사자다. "다른 봉사활동은 몸으로 때우면(?) 되는데 이건 전문적인 영역이라 노력하지 않으면 계속 할 수가 없어요."
효목도서관에서 녹음을 하는 13명의 자원봉사자 가운데 5명의 주부들이 더 나은 녹음봉사를 위해 모임 '소리향'을 만든 것은 지난해 10월. 매달 셋째 주 월요일에 만나 두 시간 동안 각자가 녹음한 자료를 들으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고쳐나간다. 지난 16일 오전 10시,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김명수(46)·신명희(46)·김숙영(34)·오춘희(44) 씨 등 4명의 주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KBS 아나운서실에서 펴낸 교재로 공부를 한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한국어 표준발음법'을 여러 차례 읽고 숙지하는 일.
모임이 시작되자 곧바로 각자 녹음한 부분을 듣고 경상도 억양이 강하거나 틀린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회장인 김명수 씨도 예외가 없다. '늠름하게'를 '늠넘하게'로 읽어서 지적됐다. 대부분의 경상도 사람들처럼 이들도 '승리'(승니로 읽어야 함)를 '성니'로 발음하는 등 '으'발음에 약하다.
김숙영 씨는 'ㅎ'과 'ㅍ'발음이 나오면 긴장한다. 올해로 4년째인 베테랑이지만 자주 틀리는 부분은 있기 마련. 그녀는 결혼 전부터 시작한 이 일에 푹 빠졌다.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문화유적답사에도 빠지지 않는다. "전부터 자원봉사를 하고 싶었어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했고 그때 시각장애인봉사자 모집 안내가 제 눈에 크게 띈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직 초보인 오춘희 씨는 "도표가 나올 때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한다. 신명희 씨는 2004년 고3이던 아들과 함께 효목도서관을 드나들다가 녹음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했다. "그때는 (녹음)테스트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했다면 떨어졌을 것 같은데요."라며 웃어 넘긴다. 그녀는 도서관을 다니면서 '동화구연' 강좌도 들었다. 책 읽어주는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회장을 맡고있는 김명수 씨는 도서관 사서공무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경남이 고향인 그녀는 대구로 이사오던 2001년부터 효목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녹음도서의 음질측정을 했다. 녹음도서 요청이 늘어나면서 녹음실을 갖추게 된 것은 김씨를 비롯한 이들 자원봉사자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음은 전문적인 영역에 속한다. 녹음자원봉사를 하고싶어도 요즘은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효목도서관 시각장애인실을 관리하고 있는 이해동(28) 씨는 "녹음한 것을 함께 들어보고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른 봉사활동을 조심스럽게 권유한다."고 말했다.
효목도서관의 책 읽어주는 이들 여자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천사의 목소리를 가진 '꽁스땅스'로 인기를 끌고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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