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닝, 교활함의 매력/ 돈 허조그 지음·이경식 옮김/ 황소자리 펴냄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영웅담을 노래하는 '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은 눈물겹다.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혹하지 않도록 스스로 자기 몸을 기둥에 묶고, 머리 여섯 개인 괴물 스킬라와 소용돌이 괴물 카리브디스 사이의 좁은 해협을 무자비할 정도로 용감하게 항진한다. 스킬라가 부하 여섯 명을 잡아먹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하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채 말이다.
고향에 와서는 거지로 변장해 적의 영토가 된 고향을 정찰하고 아내 페넬로페를 괴롭히기도 한다. 지은이는 이 모든 사례를 자세히 살피며 오디세이아를 달리 본다. "오디세우스의 교활함을 찬양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의 교활함은 사람들이 본받고 따라야 할 모범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는 말과 함께.(1장 딜레마)
영어의 'cunning(교활함)'은 1500년대 후반 '속임수'의 뜻을 지니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지식(knowledge)을 의미했다. "지식, 성, 그리고 권력은 가장 교활하며 교활함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영역"이라는 지은이의 주장에 의하면 결국 지식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교활할 수도 있다. 기차에 무임승차할 때 형사가 제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철도 노동자 작업복과 모자를 얻어 감시와 검문을 피했다는 미국의 한 부랑자는 똑똑한 것일까, 교활한 것일까? 필요에 따라 수시로 태도를 바꾸어야 하는 이중 간첩의 이중 가면은 그가 똑똑해서일까, 교활해서일까?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남을 대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래서 "교활함은 새로이 국가 권력을 손에 넣은 군주나 혹은 정치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어느 누구도 승리를 포기할 수 없다면 결국 모두가 멋진 승리를 따내기 위해 '교활한 악당'의 대열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2장 겉모습)
수다와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국인 백만장자 딸을 사칭하고 사기 행각을 벌인 테레즈 윔베르는 교활하기만 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조차 그것을 사실로 믿었기 때문일까? 한 회사의 직원이자 아버지 혹은 어머니, 자식, 어떤 모임의 회원이거나 회장 등 서로 다른 수많은 역할을 가진 현대인들은 '역할 수행이냐 이탈이냐', 그리고 '역할 수행에 얼마나 시간을 배분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교활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의 최고의 신 제우스가 교활함[메티스]을 삼켜서 영원히 그녀의 지혜에 의존할 수 있게 됐다고 설정한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3장 절망?)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며 발랄하고 도발적'인 이 책에서 지은이는 '교활함'이라는 영역에서 '합리성과 사회적 역할 그리고 도덕성'이라는 세 개의 개념이 서로 뒤엉켜 있으며, 이들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말한다. 교활함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탐사하고 있는 책은 정치철학자 특유의 예리한 시각으로 고대 신화는 물론 역사 속 인물은 물론 현대인의 이야기 등 시대를 넘나드는 일화를 위트 넘치는 문체로 녹여낸 결과물이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교활함이라는 영역과 관련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불편함을 더욱더 깊고 또 날카롭게 정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교활함이 있기에 우리는 '방법'을 알 수 있다고." 과감하게 말한다. 결국, '교활함'은 혐오스런 것이기보다는 '매혹적'인 것이 아닐까?
그러나 지은이는 어떤 구체적인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이를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을 뿐이다. 408쪽. 2만 3천 원.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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