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입주인데 무자격?" 계약해지 일파만파

입력 2007-04-20 10:45:51

"입주가 며칠 안 남았는데 하늘이 캄캄합니다."

대구 수성구의 40평형대 아파트를 지난해 8천만 원의 프리미엄을 주고 구입한 K씨. K씨는 여기에다 몇천만 원의 돈을 더 들여 발코니 확장 공사를 끝낸 뒤 이달 말 입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K씨는 시행사로부터 '전매로 구입한 아파트의 당초 계약자가 부적격자로 드러나 계약이 취소됐으니 입주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감사원 지침'에 따라 계약 해지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 K씨는 당초 계약자와 시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K씨는 "분양을 한 뒤 2년이 지나서 부적격자 통보를 하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어떻게 모든 책임을 마지막 계약자에게만 돌릴수 있느냐."며 "행정기관의 일방적인 횡포"라고 분노했다.

아파트 부적격 당첨자에 대한 뒤늦은 '계약 해지' 파장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2003년부터 3년간 분양된 아파트가 60여 개를 넘어 현재까지 확인된 9개 단지 122명 외에도 줄 '계약 해지'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문제는 이 같은 계약 해지 조치가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 조치'라는 점과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

다주택자이면서도 1순위로 청약을 한 계약자에게 원천적인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청약 업무'와 관련된 시공사나 시행사, 구·군청, 건교부 등도 '책임'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상 '주택투기 지역내' 다주택자에 대한 1순위 청약 자격 제한이 시작된 것은 2002년 9월 5일. 수도권 아파트에서 청약 과열 분위기가 일어나면서 정부가 취한 조치로 당시 대구는 '투기 과열 지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대구도 유림 노르웨이숲을 시작으로 과열 분위기가 나타나자 2003년 10월 2일 수성구가 투기과열 지구로 지정됐으며 11월에는 대구 전 지역이 '투기 과열지구'로 지정됐다.

이 과정에서 시공·시행사는 물론 구·군청에서조차 '1순위 다주택자' 처리에 대한 '업무 이해도'나 '확인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한 시공사 관계자는 "투기과열 지구 지정 이전에는 금융감독원 조회만을 통해 청약 자격 유무를 확인, 계약을 했다."며 "당시 시공사는 물론 지자체조차도 '건교부를 통한 다주택자 확인' 작업에 대해 소홀히 했으며 건교부도 확인 통보를 계약 이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또 2003년 '10·29' 부동산 조치로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서 아파트 분양때 '미분양'이 일어난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분양 단지인 만큼 1순위 당첨자에 대한 자격 여부 확인이 당연히 별 의미를 갖지 않는데다 '사후 통보'를 받더라도 계약 해지 후 재계약을 하지 않고 관행상 당초 계약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분양 대행사의 한 대표는 "청약 자격 제한은 청약 경쟁률이 높을 때 필요한 조치"라며 "미분양 단지에 대해 청약 자격 제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몇년이 지난뒤 계약 해지를 한다는 것 또한 넌센스에 가까운 행정 조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3년 10월 투기과열 지구 지정 이후 2005년까지 대구에서 분양된 단지중 1순위에서 청약이 마감된 단지는 10개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

이 때문에 일부 시공사나 시행사는 감사원 지침에 따른 계약 해지 조치가 '현실을 무시했다'며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한편,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단지 중에는 이미 입주를 마친 단지도 있는데다 '계약 해지' 이후 일괄 모집 공고를 통해 재분양을 할 경우 전매로 아파트를 구입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책도 사라져 후유증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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