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농촌체험] ⑤고령 산주 녹색농촌

입력 2007-04-19 07:13:53

조용하던 시골 마을이 갑자기 아이들 소리로 떠들썩하다. "엄마, 이거 무슨 풀이에요?" "그건 달래란다. 된장찌개에 넣은 거 먹어봤지?" "아빠, 이리 와 보세요. 송아지예요! 저기는 토끼도 있어요." "그래, 우리 소에게 짚 한 번 줘볼까?"

오랜만에 가족들 손을 잡고 나선 봄나들이에 부모들도 들뜨기는 마찬가지. 고사리손으로 감자 심는 모습이 대견한 듯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고 따뜻한 봄볕 아래 쑥이며 달래를 캐며 떠드는 수다는 끝이 없을 것 같다.

600살이나 됐다는 은행나무가 지키고 있는 마을회관 앞에서는 가마솥이 지글지글 끓는다. 달착지근한 냄새를 따라가 보니 딸기잼을 만드는 중이다. 빨간 딸기들이 솥 안에서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입에는 군침이 절로 괸다. "딸기잼을 사먹기만 했는데 오늘 많이 배우네요.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게 아주 즐거워요."

오랜만에 밭일(?)을 한 뒤라 저녁식사는 꿀맛이다. 모두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씩 금세 비운다. 하지만 정성스레 손님상을 차린 마을 할머니들 앞에선 괜스레 부끄러워진다. "여긴 시골이라 먹을 게 별로 없제. 그래도 많이 묵어라." "할머니, 반찬들이 너무 맛있어요. 밥 좀 더 주세요." 풍성한 식탁 위로 도시와 농촌이 하나로 묶여진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마을체험장에서는 가오리연 만들기가 시작된다. 까마득한 옛 기억을 되살려 솜씨를 부려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도우미로 나선 마을 박기봉(65), 이재호(67) 할아버지는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SOS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가오리연이 방패연보다 만들기는 쉽지만 무게중심을 잘 잡아줘야 해. 요놈은 꼬리를 더 길게 붙여봐." 낮에 만든 손두부와 직접 빚은 동동주의 환상적 조화에 어른들이 감탄하는 동안 아이들은 연을 날릴 내일이 멀게만 느껴진다.

이튿날 아침, 평소 같으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달콤한 늦잠을 즐기겠지만 상쾌한 산촌의 아침은 방바닥에서 맞기에 너무 아깝다. 식사를 마친 뒤 서둘러 등산에 나선다. 참꽃·철쭉 군락지가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진 만대산 등산로 입구까지의 이동수단은 경운기. 마을 어르신들이 몰고 나온 경운기 4대가 힘차게 시동을 걸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기대에 부풀어 오른다.

오은도(49) 이장은 "산 중턱에 있는 고령 신씨 시조 묘는 '만대영화지'(萬代榮華地)로 불려 풍수지리학자들이 많이 찾는다."며 "진달래는 요즘 지고 있지만 철쭉이 만개하면 장관"이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비닐하우스 안은 봄꽃 향기 못지않게 진한 딸기향이 가득하다. 파란 잎사귀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딸기를 따느라 손도 바쁘고 먹느라 입도 쉴 틈이 없다. 모두들 욕심껏 딸기를 땄지만 마을주민들은 딸기잼도 하나씩 가져가라며 쥐어준다. "이렇게 얻어가기만 해서 어떡해요. 너무 죄송하네요." "아니야, 이젠 우리 마을 명예주민들이잖아. 6월쯤 다시 오면 개천에서 다슬기도 줍고 감자도 캐. 꼭 다시 올 거라고 약속해." "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우리 마음의 고향, 농촌에서의 이틀은 내일을 위한 또 다른 약속이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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