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사기장 김영식 씨

입력 2007-04-13 07:17:58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하늘재. 영남과 충청을 잇는 이 고개를 바라보는 곳에는 160년이 넘은 현존 최고(最古)로 추정되는 망댕이 가마(경북 민속자료 제135호)가 있다. 조선 헌종 9년(1843년) 창업한 뒤 줄곧 명맥을 이어온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기장 문산(聞山) 김영식(38) 씨. 8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TV문학관이나 설날 특집극을 찍는다고 많이들 찾아왔어요." 김 씨는 경북 북부 특유의 억양으로 가마를 설명했다. 그는 망댕이 가마를 지난 1999년까지 직접 사용했다고 한다. 1995년 산에서 조금 더 내려온 현재의 집(관음리 337번지)으로 이사를 했지만 전통을 고수했던 것이다.

2000년에는 현재 작업장 옆에 새 가마를 올렸다. 우여곡절이 좀 있었다고 한다. "가마 허가가 안 나더라고요. 제조업법 적용을 받아 중소기업으로 등록한 뒤에야 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요." 해마다 찻사발축제를 여는 문경시에서 법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는 대목이다.

김 씨는 문화재법도 장애가 된다고 했다. 문화재 반경 500m 이내에서는 시설물 설치가 제한받기 때문. '조금은 유연한 법률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씨의 생각이다. 망댕이 가마를 민속자료로 지정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땅 명의가 딴 사람 앞으로 되어 있어 법적으로 지정을 할 수가 없었던 것.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7년이 걸렸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에서야 정식으로 문화재 지정이 됐다.

김 씨에게는 '가업을 전승하고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이 있다. 그래서 "문양 하나도 아무렇게나 넣은 것이 없다."고 한다. 김 씨의 도자기 속에 담긴 나비 문양도 그렇게 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안 쓰면 사라지잖아요." 전통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푸른 기운을 띈 문경 백자는 그렇게 계승되고 있다. 숙부인 백산(白山) 김정옥(중요 무형문화재 105호) 씨와 그 아들 경식 씨, 중부(仲父)인 김복만 씨의 아들인 선식 씨도 김 씨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김 씨는 무조건 전통만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다관 손잡이에 문양을 넣는 등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다. "임자를 만나야 비로소 팔려나간다."는 이도 다완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도 다완은 일본을 포함한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 도자 예술의 대표이다.

제대로 맛을 살리기가 쉽지 않아 작품으로 살아남는 게 한 가마에서 겨우 1% 정도다. 그러다 보니 새 가마터 주변에는 김 씨의 손에서 박살난 도자기 파편이 수북이 쌓여 있다. 김 씨도 처음부터 도예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선친의 작업을 돕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1989년 선친이 갑작스레 작고하면서 가업을 계승해야만 했다. 제대로 배운 것이 없었기에 숙부를 찾아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혔다. 어릴 때 선친의 작업을 봐온 게 그나마 도움이 됐다. 피는 속일 수 없었는지 그렇게 2년 만에 자신의 그릇을 구워내며 본격적인 도예가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김 씨의 아이들(2남 1녀)도 아버지처럼 흙을 벗삼아 지내고 있다. 김 씨는 '아직 어려서 모르겠다.'지만, 누군가는 또 자신의 뒤를 이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산 좋고 물 좋은 하늘재 허리에서 300년 전통을 이어가는 조선요(朝鮮窯) 현장이 더욱 빛나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