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정의 독서일기]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

입력 2007-04-12 17:19:35

우당(友堂) 이회영의 집안은 한국의 노불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지배층의 엄격한 의무)를 대표하는 집안이라고 한다.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냈던 이유승의 넷째 아들인 우당은 나라가 망하자 형제들을 설득해 가산을 정리하여 60여명의 가솔들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한다. 수많은 정승들을 배출한 명문대가의 여섯 형제들이 망한 나라에서는 살 수 없다며 열 두 대의 마차에 나눠 타고 눈보라치는 만주 벌판을 건너가는 풍경은 불과 백여 년 전의 일이지만 상상만으로도 비장한 감동을 준다.

우당은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했고, 헤이그 특사 파견과 고종 망명계획을 주도했으며, 상해와 북경 그리고 만주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그들에게 가난과 고생이야 흔한 일이었겠지만 가져간 자금이 바닥나 중국의 빈민가를 전전하면서도 우당은 충정과 기개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끼니조차 잇지 못할 만큼 어려웠다니 그 참상이 오죽했을까. 딸의 옷까지 팔아먹고 기력 없이 누워있는 우당 식구들의 모습을 회고하는 정화암의 글에서는 피눈물이 어려 있다.

이 책은 우당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그 이면은 우당의 사상적 종착지인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우당과 교우 했던 '젊은 그들'인 독립운동가들 중 상당수가 아나키스트였다. 하지만 그 시절 좌도 우도 아닌 그들은 자유주의 체제와 전체주의 체제의 양편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제 냉전 시대도 막을 내렸고,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 거칠게 번역하던 시절'도 지나갔다. 또한 남과 북이 날카롭게 대치하던 시절도 아니다. 바야흐로 '평등을 추구하지만 결코 독재와 집단 이기주의를 용인하지 않으며, 자유를 추구하지만 방종을 간과하지 않은 공공선'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냉전체제가 이 사회에서 모조리 없어진 것도 아니며 우리 속에 있는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완전히 뿌리뽑힌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누구도 공공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신과 집단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따질 뿐이다. 우리 사회에 아나키즘이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아나키즘이 지향하는 세계화는 개인과 지역과 국가가 서로 돕는 '상호부조'를 주축으로 할 것이기에 그 결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생태운동. 소규모 공동체운동. 대안교육운동뿐 아니라 시민운동과 NGO운동의 사상적 배경도 아나키즘이라고 한다. 간디의 '마을 스와라지' 운동 또한 이런 맥락일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무한경쟁과 약육강식, 그리고 양극화의 세상으로 몰아가고 있는 요즘 그에 대한 저항논리로서 아나키즘이 세계적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니, 반갑다.

1932년, 우당은 상해에서 만주로 가다가 밀정의 밀고로 일경에게 체포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의 가족 대다수는 굶주림과 병 그리고 고문으로 중국에서 죽었다. 어찌 그들뿐이랴. '민족해방과 인간해방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믿었고 인간을 속박하는 모든 억압에 대해 기꺼이 저항하고 목숨을 던졌던 선열들. 오늘의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그 빚을 갚을 수 있을는지.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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