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 낙화를 보며

입력 2007-04-11 07:02:36

한 친구의 집 바로 옆에 엄청 키 큰 백목련 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토록 크고 우람한 목련나무는 본 적이 없을 정도다. 해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룬다.

얼마 전, 그 아래 자리를 깔고 몇몇 지인들과 꽃놀이를 했다. 이름하여 '목련제'. 이 풍진 세상을 다시 찾아와준 것이 고마워 붉은 와인 한잔을 둥치에 부어주며 공손히 부탁도 했다. "내년에도 잊지 말고 고운 꽃 많이 피워줍시사."하면서.

치어다보니 한 나무에도 피고 지는 것이 제각각이었다. 솜털 꽃망울에서부터 한두 잎만 살짝 벌어진 것, 활짝 만개한 것, 흉하게 갈색으로 변해 지고 있는 것, 떨어져 땅에 누운 것…. 높은 곳일수록, 햇볕을 많이 받는 것일수록 빨리 피었다 빨리 진다. 낮은 곳, 그늘에 있는 것일수록 더디 피지만 대신 가장 늦게까지 간다. 오월 모란만 뚝뚝 떨어지나 했더니 목련 역시 그렇게 뚝뚝 떨어진다.

그러고 보니 빨리 핀 것은 빨리 지고 느지막이 핀 것은 늦게 지니 억울할 것도 없겠다. 참으로 공평한 자연의 섭리다.

봄꽃은 이를 데 없이 화사하다. 하지만 다른 계절의 꽃들에 비해 유난히 수명이 짧다. 길어야 열흘 안팎. 무릇 아름다운 건 왜 이리도 빨리 사라져 아쉬움을 남기는지….

한 후배가 영남대 캠퍼스의 벚꽃 터널이 볼 만하다며 불렀다. 이미 절정기를 지난 탓에 살랑이는 미풍에도 속절없이 떨어져 발치엔 꽃눈이 쌓여 있었다. '이 벚꽃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가'라는 일본 하이쿠(俳句)의 시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세상을 무지개 계절로 채색하다 언제 그랬더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지는 봄꽃은 자신만큼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온갖 욕심부리는 우리에게 삶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말없이 말해준다. 그러기에 옛 시인은 '해마다 피는 꽃은 서로 비슷하지만 해마다 보는 사람은 같지를 않구나(年年歲歲花相似 年年歲歲人不同)'라고 노래했던 모양이다.(당나라 劉廷芝(유정지)의 '흰머리를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함(代悲白頭翁)' 중)

지금은 꽃 피는 계절이자 落花(낙화)의 계절이다. 그러기에 '낙화가 분분한 4월에는 막차가 끝나기 전에 꼭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그리움에 함께 젖어들고 싶어진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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