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옛책과 만나는 기쁨

입력 2007-04-10 07:04:28

요즘 귀한 옛책을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 고본(古本)으로 불리는 임진왜란 이전본, 특히 조선초기와 고려시대에 간행된 책에서부터, 이 지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본, 남아 있는 책이 몇 권 되지 않는 희귀본, 책을 내기 위한 원고본, 장정과 인쇄 상태가 아주 준수한 미본, 유명한 분의 장서인이 찍혀 있는 수택본 등 좋은 옛책과 만나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조선 성종이 형님인 월산대군의 시문을 모아 1400년대 말에 초주갑인자로 찍은 유일본인 '풍월정집(風月亭集)', 함경도 일대의 풍속과 산물 등을 그 지역 특산 종이인 북황지(北黃紙)를 사용하여 인출한 초간본 희귀본 지지(地誌)인 '북관지(北關誌)', 1500년대 초반에 간행한 도가 서적인 '옥추보경(玉趨寶經)', 대구에서 간행한 1600년대의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록인 '사마방목(司馬榜目)', 의열(義烈) 관련 목판화가 10면이 있는 희귀본인 '의열도(義烈圖)' 등을 근래에 만났다.

그 중 '의열도'는 1703년 당시 선산부사 조구명이 선산의 대표적인 의(義)·열(烈)과 관계된 사례를 통하여 백성들을 교화하기 펴낸 책이다.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된 책으로 '의우도(義牛圖)'에는 목판화 8면과, 1630년에 쓴 선산부사 조찬한의 서문이 있다. 다음 향랑전(香娘傳)은 2면의 판화와 선산부사 조구명의 기(記)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에는 이 책 전체의 의의를 밝히는 권상하의 발문이 들어 있다.

의열도 중 의우도 부분은 현재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 위치하고 있는 경상북도 지방 민속자료 106호인 '의우총(義牛塚)' 관련 자료로, 여기 실린 8면의 목판화는 세계 최초의 4칸 만화로 인정받고 있다. 농부와 암소가 밭을 갈고 있는데, 호랑이가 주위에 엎드려 기회를 노리는 장면부터, 암소가 주인을 구하려고 뿔로 받아 호랑이를 쫓는 장면, 상처를 입은 농부가 숨을 거두면서 소를 자신 곁에 묻어주라고 유언하는 장면 등이 들어 있다.

간단한 그림 몇 장을 통해 충분한 교육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소도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은….'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어리석은'의 옛말) 백성들에게는 어려운 문자보다는 단순 명쾌한 그림이 더욱 쉽고 효과적이라는 점을 잘 간파한 출판물인 것이다. 행실도(오륜, 삼강, 이륜) 종류의 옛책들도 판화를 이용한 백성 교화용 저술들이다. 오늘날 만화를 활용하여 홍보용, 교육용 등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현제(한옥션 대표)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