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명연설

입력 2007-04-04 11:48:42

게티즈버그 전투는 미국 남북전쟁의 전환점이었다. 사흘간 5만 이상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은 혈전이었다. 혈전지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링컨 미국 대통령은 연설을 했다. 당대 미국의 손꼽히는 웅변가가 먼저 2시간짜리 연설을 한 후였다. 링컨의 연설 시간은 2분에 불과했고 연설문의 단어는 고작 266개였다. 그는 승리를 자축하지도, 남군을 비난하고 노예제 폐지의 정당성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대신 살아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강조했다.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을 기리고 그들의 뜻을 이어가자고 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후일 게티즈버그 연설로 명명된 이 연설의 마지막 구절은 미국 정신의 표현을 넘어 민주주의의 정신으로 전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담기게 됐다.

크고 작은 모임마다 장황한 연설은 듣는 이를 지루하게 만든다. 업적을 내세우고 온갖 자랑과 미사여구가 난무하지만 그게 그것일 뿐인 말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충분한 말을 두고 이리저리 이어 가며 시간을 끌기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마음은 따로 움직인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마음과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하는 말을 두고 명연설이라고 한다.

한미 FTA 협상이 체결된 날 밤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가 있었다.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며 먹고사는 문제라고 했다. 도전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FTA를 두고 긴가민가 하던 적잖은 사람들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의지와 고심, 내일에의 희망을 호소하고 강조했다. 야당에서조차 담화를 들으니 대통령답더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때 여당 대통령 후보를 꿈꾸던 현역 정치인은 정치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주고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을 꼽았다. 당장의 풍요보다는 미래에의 희망과 자긍심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정치의 요체를 감동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미국의 번영과 발전이 링컨의 연설을 명연설로 자리매김하게 했다면 도전과 내일에의 희망을 호소한 우리 대통령의 담화도 FTA의 결과에 따라서는 명연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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