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삼학년이 된 큰딸과 함께한/ 어느 봄날 새벽을 위하여/ 이 시를 씁니다./ 새벽밥과 두 개의 도시락으로 건너는/ 오전 여섯시의 팔달교./ 큰딸은 대입 수학 능력 시험을/ 여덟 달 남긴 고행자./ 수능이 수도의 능력이라면,/ 이 녀석은 이미 고승(高僧)이며 대덕(大德)입니다.'
내 작품 '그냥 주욱 달렸습니다'에서 끄집어낸 구절이다. 이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2년여의 준비 끝에 공무원이 되어 2년째 보건복지부에서 일하고 있으니, 이 글 속의 '어느 봄날'은 10여 년 전의 어느 봄날인 셈이다. 그 후로 둘째, 셋째까지 고3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쳤다.
가장 눈부신 인생의 한 시절을 건너고 있는 그들의 가슴에 낙인처럼 붉게 찍힌 고3. 목련꽃 피는 이 화사한 봄볕을 피해 면벽좌선에 들어선 이 땅의 무수한 고3들. 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동안 좀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었을 법한데, 고3에게 주어진 시련의 강도는 오히려 가중되고 있는 듯하다. 한 통계에 따르면 고3의 63%가 하루에 다섯 시간 미만의 수면을 취하고 있다. 사생결단의 장렬함이 안쓰럽다. 더욱이 허탈한 것은 이러한 노력이 인적 자원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외고에 다닌 외국인 고3 학생은 한국에서 고3 생활을 해내면 이 세상에서 못할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땅의 고3은 다 구도자들이다. 그들은 청춘을 구가할 황금의 시간을 서슴없이 베내어 바치고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런데 그들이 당도하는 성지(聖地)가 그렇고 그런 대학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대학은 구원의 피안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하는 곳이다. 이런저런 학과를 선택해서 들어가 놓고는 전공은 건성으로 하고 취업 준비에 몰두한다. 그 대표적인 영역이 공무원 시험이다. 또다시 고3과는 게임이 안 되는 처절한 수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리저리 뜯어고치고 꿰맞추는 임상적 처방으로는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이 되기 십상이다. 장자의 칼과 같은 쾌도난마의 해법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저들에게 3㎝의 키를 돌려주고, 가슴 깊숙이 숨어있는 재능과 비전을 찾아내는 아름다운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걸음이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 같기는 한데….
김선굉(시인·의성 단밀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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