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약속지킨 스님과 교수

입력 2007-03-26 07:06:02

1987년 4월 국군 대구통합병원. 푸른 환자복을 입은 두 병사가 불당 기원정사에서 다짐을 한다. 한 사람은 산중으로 출가해 불가에 귀의하고, 한 사람은 대학교수가 되어 불교 현대화에 앞장서기로 한다. 백일기도를 올린 둘은 불교 포교를 염원하며 헤어진다.

"반드시 다시 만나 부처님의 뜻을 세상에 펼치자." 그리고 약속대로 한 사람은 89년 출가해 성철 스님 문하에서 수행 정진에 진력하고, 한 사람은 88년 박사과정을 마치고 94년 마침내 교수가 되었다. 속가와 불가의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둘은 기원정사의 원력 발원을 잊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스님을 찾은 교수는 그날의 약속을 떠올리고 함께 포교의 길을 가자며 수행공동체를 제안한다.

2007년 3월.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의 오래된 가옥을 개조한 '백장문화원'이 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 선 스님과 교수는 "이제 20년 전의 약속이 이뤄졌다."며 마주보고 웃었다.

불교수행공동체 '백장선원'의 지도법사 원구 스님과 사무처장인 장호경(46) 대구한의대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희한하게도 이날 문을 연 '백장문화원'은 처음 약속했던 그 기원정사에서 불과 몇 백m의 거리. 의도하지 않았던 인연에 둘은 또 합장했다.

'백장선원'은 21세기 새로운 불교 공동체로 '젊은 포교'를 기치로 걸었다. 장 교수는 2003년 미국 LA를 방문해 현지에서 진행되는 중국과 미국, 한국의 다양한 불교의 포교 상황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불교단체가 해 오던 방식과 완전히 다른 수행공동체를 구상했다. 생활 속에 실천하는, 대중이 함께하는 수행 결사체다.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공동의 주제와 취미를 함께하는 방식이다.

물론 수행은 기본이다. 회원은 매일 108배 참회기도를 올리고 수행한다. 수행의 중심이 원구 스님이다. 그는 성철 스님이 1993년 11월 열반할 때까지 5년 동안 그림자처럼 시봉(侍奉)했다. '근수역행(勤修力行)'. 남을 위해 내 마음을 닦고, 닦은 바를 힘써 실천하라. 성철 스님이 "불교가 뭐냐?"고 묻자 답한 말이다. 이 말을 '백장선원' 수행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것이 평생 수행에만 정진했던 큰스님의 뜻에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다른 수행으로 '무소유'를 실천하는 스님과 충실한 불자로 세상의 흐름을 알고 있는 교수. 둘은 합장하는 왼손과 오른손처럼 잘 어울리며 불국토를 꿈꾼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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