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국악의 참맛

입력 2007-03-23 07:43:10

음악은 느리면 지루하다?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나 '그레고리안 찬트' 등 느린 곡들을 좋아하는 대중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교향곡을 깊이 있게 감상하는 사람들은 느린 2악장이 더 좋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빠른 음악을 즐기는 것을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창의 풍경을 즐기는 것에 비유하면, 느린 음악을 듣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걸어가면서 즐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국악에 느린 곡이 많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하나하나의 음을 서양 사람들보다 깊이 있게 음미했기 때문이다.

빠른 음악에서는 여러 음이 모여 어떤 모양을 이루느냐가 중요하지만 느린 음악에서는 한 음의 모습과 가치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국악에서는 음들이 각기 특이한 형태의 자연석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석으로 정원을 꾸미는 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국악의 참 맛은 느린 음악에 있다. 바다를 두고 언제 보아도 변함없이 있기에 지루하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하기도 한다. 국악에는 서양음악식 변화는 적지만 국악식 변화는 풍부하기 때문에, 국악을 들을 때에는 서양식 변화의 개념을 버리고 국악 고유의 변화성을 이해해야 한다.

'국악은 지루하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양음악에 길들여졌거나, 편협된 음악정서를 지닌 사람일지도 모른다. 국악 중에서 어느 곡보다도 느리고 지루하게 들리는 곡은 '여민락'일 것이다.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이 대곡은 양악에서 느리다고 하는 템포의 2.5배쯤 더 느린 곡이다.

푸른 바다의 아름다움 같다고나 할까. 한없이 넓고 푸르른 바다처럼 펼쳐지는 여민락의 음악 세계는 우리의 가슴을 열어주고 우주의 신비를 말해주는 듯 시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진다. 바다에는 빨갛고 노란 빛이 없이 푸른 물밖에 없어서 재미없다는 말이나, 여민락은 단조로워 재미가 없다는 말이나 유사한 난센스일지 모른다.

자연에 동화되어 은은히 일렁이는 흥취는 영산회상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다. 가곡은 우리 선인들의 고박(古朴)한 시정(詩情)이 넘치고 있다. 국악뿐만 아니라 어느 음악이건 그 음악의 독특한 양식과 어법을 모르면 즐길 수 없다.

어떤 때는 느리고 단조로워서 졸립고 또 어떤 때는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골치만 아플 뿐이다. 사실 국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듯 국악이 느리고 단조로워서가 아니라 사실은 국악의 독특한 된장 맛 김치 맛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수 (대구교대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