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조의 수다수다] 까칠한 여성이 뜬다

입력 2007-03-22 16:47:49

주위의 누군가에게 "당신 정말 나쁜 여자야."라고 말을 툭 던져보자.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직도 한참을 고민한 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었니?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닌데…."라고 대답하는 순진한 여성들도 상당수겠지만 "그래, 나 나빠. 그래서 뭐? 내가 내 가치관데로 살겠다는데 니가 뭐 도와준 거라도 있어?"라고 톡 쏘는 강심장들도 꽤나 많아졌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더 이상 '나쁜'이라는 의미가 정말 나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쁜여자가 되자'고 선동하는 광고, 드라마 속 캐릭터, 대중음악, 자기개발서가 넘쳐나고 있다. 왜 세상은 여자들을 '나쁘게' 될 수 밖에 없게 하는가?

#까칠한 드라마 속 캐릭터들

지난해 최고의 싸가지 캐릭터는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상실(한예슬 역)이었다. 세상에 무서울 것도, 거칠 것도 없는 여자. 시종일관 "꼬라지하고는~", "맘에 안들어."를 내뱉는다. 나상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꼬라지하고는~"때문에 상대방의 기분은 처참하게 망가지지만 나상실에게 남의 사정 따위는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보고 느끼는대로 말을 할 뿐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가 시청자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은 것도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까칠한' 캐릭터의 영향을 톡톡히 봤다. 나이많고, 뚱뚱하고, 애인에게 차인 김삼순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쏘아붙이는 '천상 여자' 타입이었다면 그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잘 난 것 하나 없지만 김삼순은 세상에 거침없이 당당했다. 직상 상사이건, 연장자이건 할말은 똑 부러지게 하고 만다. 심지어는 욕설을 이죽거리기까지 했다.

역사 속 황진이도 드라마를 통해 한층 더 '까칠해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양반과 지식인을 손에 가지고 노는 정도에서가 아니라 스승인 백무에게까지 막말을 쏟아냈다.

#나 나빠, 그래서 어쨌는데?

언어는 사람살이의 반영이다. 그래서 세상이 변하면서 단어의 의미도 많이 바뀌어간다. 과거에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대명사들이 요즘은 당당히 고개를 쳐든다. "그래서? 어쨌는데?"라고….

예전 같으면 '까칠하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이 말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약간의 긍정적인 의미까지 내포하게 됐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쩔수 없이 필요한 정도의 '악'을 갖춘 사람 정도의 의미로 치부될 뿐이다.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의 까다로움, 그리고 당당함.

'싸가지'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싹수'의 방언(강원, 전남)이 변화된 말로, 지금은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싸가지'라는 말이 꼭 나쁜 의미로만은 사용되지 않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대중문화 속에서는 오히려 '싸가지' 캐릭터가 주목받는 세상이 됐다.

'나쁘다'는 형용사 역시 그 의미가 변화했다. 요즘 여성들은 공공연하게 '나쁜 여자'이길 자처하고 나선다. '나쁘다'라는 것이 정말 악하다, 도리에 어긋낫다는 표현이기보다는 세상에 맞서 자기 할 말 똑부러지게 하고, 자기 욕심을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이기적'이라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예전같으면 '이기적'이라는 형용사 자체로도 부정적인 의미가 상당히 컸지만, 요즘은 적당히 이기적이어야 남들위에 군림하며 살고 세상에 수월하게 적응한다는 사고방식이 자리잡으면서 '필요악'이 됐다.

이렇게 단어의 의미가 변화된 데는 중요한 기본 원리 하나가 숨어 있다. 착하고 순종적인 여성보다는 세상의 중심에 '자신'을 둔 당당한 여성들이 대세를 차지했고, 그런 여성들이 '우상'이 됐기 때문이다.

#능력없고 멍청한 대명사 '착하다'

반면에 '착한'이나 '좋은'이라는 형용사는 그 의미가 정반대로 해석되기에 이르렀다. 요즘 일부에서는 '착하다'는 멍청하다, 순진하다, 바보같다는 의미와 동일시된다. 그렇다보니 더 이상 "그 여자 참 착한 사람이야." 말은 칭찬으로 풀이되지 않는다. 일 못하고 매력없고, 하품나게 지겨운 여자 쯤으로 해석돼 들릴 뿐이다.

'나쁜여자, 착한 여자'에서 '착한 여자'로 등장하는 최진실은 다른 여자의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해 치매에 걸린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살면서도 얼굴 한 번 찌푸려 본 적 없는 인물이다. 수동적이고 참기만 하는 답답한 캐릭터에 시청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저런건 착한게 지나쳐서 멍청한거지. 바보도 아니고 요즘 저렇게 답답한 여자가 어디있어. 여자 망신 다 시키네." 이게 요즘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기존 트렌디 드라마에서 보여지던 착하고 청순가련형의 여성, 혹은 캔디형 억척 주인공의 등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오히려 '까칠한' 캐릭터가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내숭하고는 거리가 멀고, 가난하고 소박한 모습을 내세우기보다는 부자에 사치품으로 몸을 치장하고, 눈물따위로 '사랑'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대한 여성들의 반란

드라마속 캐릭터들의 변화는 바로 사람들의 인식를 나타낸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남자에 얽매여 눈물흘리고, 가정에 헌신하느라 자신을 돌보는 일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 여성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는다.

내 행복을 위해서는 적당히 권모술수와 잔꾀도 부릴 줄 아는 여자, 순수한 겉모습 속에 위장하기 보다는 속물이라는 점 조차도 당당하게 내세울 줄 아는 여자, 남자에 목매기 보다는 자신의 지위 향상을 위해 적당히 이를 이용할 줄 아는 여자에게 시청자들은 환호한다.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난 소중하니까!'를 외치며 이를 몸소 실천하는 캐릭터들이다.

이런 모습들은 사회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당히 '이기적'이 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때문이다. 벙어리 냉가슴만 태우다 손해를 보기보다는 주도권을 쥐고 할말 다하며 속시원하게 살겠다는 말이다.

'참고 살아봤자 돌아오는 것은 속쓰린 고통 뿐'이라는 이유도 크다. 과거에는 참고 인내하면 결국에는 착한 그 속내를 알아 줄 날이 올 것이라는 '권선징악'이란 말로 여성들을 달랬지만, 요즘 여성들은 이런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다. 참고 인내하는 사이 단 열매는 다른 누군가의 몫이 되고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참는 동안 망가진 쓰린 속 뿐이라는 것이다.

온전히 착한 여자, 온전히 나쁜 여자는 없다. 성과 악이 혼재된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일 뿐. 성녀의 이미지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관념의 틀을 벗어던지고, 욕망을 가진 이브의 모습마저도 당당한 '나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싶은 여성들의 반란이다.

이런 여성들의 변화에는 엄마들의 부추김도 큰 몫을 했다. "나는 이렇게 밖에 못살았지만 내 딸만은 나처럼 살지 말아라."는 부모세대의 푸념이 20, 30대 젊은 여성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다. 세상에 당당하고픈 여성들의 반란, 과연 '나쁘다'고만 몰아붙일 수 있을 것인가?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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