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돌아온 '봉달이'

입력 2007-03-19 11:33:34

아프리카 대륙의 '케냐(Kenya)'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마사이마라, 암보셀리 국립공원, 지금은 탄자니아에 속해 있지만 원래 케냐땅이었던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또하나 더 있다. 최근 이 나라의 국가적 브랜드가 되고 있는 것, 바로 '마라톤'이다.

요즘 케냐는 명실공히 '마라톤 왕국'으로 우뚝 서있다. 2003년, 세계 마라톤 사상 최초로 폴 터갓의 2시간 4분대 기록 진입 이후 케냐의 마라톤 전성시대가 열렸다. 특히 남자 마라톤 대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작년만 해도 세계 5대 마라톤 남자부에서 뉴욕과 베를린을 제외한 3개 대회를 휩쓸었다. 세계 161개 풀코스 대회 중 66개 대회가 케냐의 잔치였다. 경이적인 41%의 우승확률이다.

날씬하고 긴 다리로 달리는 케냐 선수들은 초원의 가젤 영양 같기도 하고, 치타 같기도 하다. 평균 해발 1600m 高度(고도)의 케냐에서는 산소 밀도가 다소 낮아 장기간 훈련을 하면 헤모글로빈과 적혈구 수치가 늘어나 폐활량이 크게 향상된다고 한다.

이번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도 21명의 케냐 선수들이 출전했다. 최근 몇년간 이렇다할 마라톤 성적을 내지 못한 우리나라로서는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대회였다.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불혹을 앞둔 이봉주 선수가 뒤집기에 성공, 우승의 월계관을 쓴 것이다.

만 37세. 마라톤 환갑 나이의 그가 세계에서 몰려든 팔팔한 건각들을 제치고 2시간 8분대 기록을 세운 것은 세계 마라톤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봉달이' 애칭으로 우리 모두에게 친근한 이웃처럼 여겨지는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황영조'이봉주로 이어지던 한국 마라톤의 전성기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도 짙어졌다.

하지만 '봉달이'는 다시 돌아왔다. 특유의 선하디 선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껴나있는 그동안에도 낙심하지 않고 철저한 자기 관리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이봉주의 성공적 재기는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하려는 대구에도 희소식이다. 오는 27일 케냐 몸바사에서 열릴 마지막 관문에서 행운의 女神(여신)이 대구의 팔을 높이 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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