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춤으로 시작된 살풀이에 이은 칼춤, 그리고 늙은 아비와 한 판 춤을 벌이더니 어느덧 그림을 그린다. 이윽고 터져나오는 창 한 가락, 다시 춤이 이어지고 양초를 든 채 캔버스를 태운다. 붉은 장미가 깔린 하얀 천으로 된 길을 찢으며 꽃을 뿌리더니, 한지를 태우는 기원 의식과 함께 끝을 맺는 퍼포먼스 '무상로'(無常路).
지난주 어느 오후 대구문화예술회관 중정홀.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 남홍 한국전' 개막식날에 열린 남홍(51)의 퍼포먼스 '무상로'는 한국의 전통을 춤과 노래, 그리고 그림으로 버무려진 종합예술 작품이었다.
이를 지켜본 100여명의 관객은 남홍의 몸짓 하나하나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천을 찢고 장미꽃잎을 흩뿌릴 때는 관객들도 남홍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순간을 함께했다. 할머니의 기억이 담긴 '종이 태우기'(燒紙) 의식과 함께 언니를 잃고 어머니를 떠나 보낸 작가는 아버지를 불러내 함께 춤을 춤으로써 '한'(恨)을 승화시켰다.
고향 산천을 바라보고 펼치는 첫 작품 전시회. 남홍에게는 오랜 염원이었다. 아무리 좋은 곳인들, 아버지와 함께 오르던 대구 앞산 등산로가, 같이 거닐던 방천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 여한이 조금은 풀렸을 것이다. 이제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죽어서 묻힐 곳도 이곳이라고 했다.
정겨운 대구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남홍은 프랑스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생각에 한다는 더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 남홍은 '한국 작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태운 한지 작업이나
퍼포먼스에 쓰는 전통춤, 이미자나 나훈아의 노래는 모두 그런 의식의 반영이다.
개막행사 다음날, "당장 어머니 산소에 가서 (대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자랑해야겠다"던 남홍의 혼과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은 18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1~4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053)606-6114.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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