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병마 시달리며 핏덩이 맡아 14년 키워온 김춘자 씨

입력 2007-03-07 09:14:14

돌아보니 참 모질게 버텨온 세월같네요. 벌써 예순여섯이라니. 남들은 미수(美壽), 제2의 인생을 살 나이라며 좋은 말들을 하지만 제겐 그저 세월만 까먹은 야속한 나이일 뿐이지요. 쉰둘에 우연히 핏덩이를 얻어 키우고 있는데 아무래도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시간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서 늘 기도합니다. 우리 딸,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가슴으로 낳은 제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이 늙은이의 명줄이 붙어있게 해달라고, 감히 또 기도합니다.

17살 때 부모님이 정해준 배필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이해심 많고 아량이 넓었던 남편은 저를 끔찍이 아꼈지요.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용하다는 한의원과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고, 애가 없는 탓이 저에게 있다는 사실을 시어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됐지요. 죄책감 때문에 그 길로 집을 나왔습니다. 정처없이 떠돌다 정착한 곳이 대구였습니다. 그때 나이가 22세였지요.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공사판에서 밥을 지으며 푼돈을 모았고 종자돈이 생겨 조그마한 분식집을 냈지요. 거칠 것 없은 순탄한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핏덩이들이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기반이 잡혀갈 때쯤 버려진 아이들을 하나 둘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세살배기 아이들의 눈망울을 외면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7년이 지나자 아이들은 여섯으로 늘었지요. 학교에 보내려고 호적을 옮기려다보니 동사무소에서는 친부모가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더군요.

이후 저는 아이들의 핏줄을 찾아주기 위해 전국을 누볐습니다. 그렇게 부모를 찾아 아이들을 돌려주니 제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더군요.

가슴 속이 뻥 뚫린 듯 휑한 바람이 파고들 무렵, 지금 저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희진(가명)이를 만났습니다. 옆집에 살던 부부가 맡긴 7개월 된 딸아이였는데 아이 아빠는 아이를 맡긴 지 두 달 만에 심장마비로 죽고, 간질과 정신지체였던 어미도 어디론가 사라졌지요. 입 천장과 목젖이 없는 언청이로 태어난 희진이는 우유 한 방울 삼키지 못했고, 저는 그 아이를 안고 결심했습니다. 하늘이 주신 이 핏덩이를 제 자식처럼 키워내겠다고.

그렇게 키워낸 희진이가 올해로 벌써 열네살이 됩니다. 4차례의 수술을 거쳐 인공 목젖과 입 천장을 만들어 줬지만 아직도 아이의 얼굴엔 상처가 도드라져 있지요. 수술비 때문에 결국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못난 어미지만 아이는 대견하게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겐 바람이 하나 더 있습니다. 희진이의 고운 얼굴에 덧대져 있는 흉측한 상처를 지워내는 겁니다.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는 희진이를 더이상 바라보기가 힘이 들어서요. 허리 디스크와 관절염 때문에 앉은뱅이 신세의 나이 많은 늙은이지만 우리 희진이를 위해 뭐든 하려고 합니다. 늙은이 몸뚱이야 조금 더 버티다 없어져도 되지만 앞길 창창한 우리 희진이의 상처만은 치료해주고 싶습니다. 6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집에서 만난 김춘자(66·여) 씨는 "못난 어미 팔자 닮지 않게 하려고 어떻게든 애를 써보는데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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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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