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표절 慣行

입력 2007-03-06 11:37:56

다시 剽竊(표절)이 문제다. 최근 무단 도용 논란을 빚은 책 '탐욕의 과학자들'이 전량 회수돼 폐기된다고 한다. 지난 1월 출간된 '탐욕의 과학자들'은 논문 조작, 표절 등 연구자들의 기만행위를 비판한 책이다. 그러나 총 300여 쪽 가운데 84쪽가량을 1982년 발간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Betrayers of the Truth)'의 원서를 표절한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표절을 비판한 책이 표절을 했다니 헛웃음만 나온다.

◇출판사 측은 표절 시비로 물의를 일으킨 데다 저작권 문제까지 걸려 있어 책을 전량 회수한다고 밝혔다. '탐욕의 과학자들'의 공동 편저자 4명 가운데 표절 부분을 담당했던 박택규 건국대 명예교수와 민영기 전 경희대 교수는 자연과학계의 원로들이다. 이들은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를 계기로 연구자의 표절 등 부정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표절 논란이 빚어지자 이들은 "안타깝고 부끄럽다"며 絶筆(절필)을 선언했다.

◇이들 원로과학자들은 오래 전 絶版(절판)돼 책의 일부를 편집해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겼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표절에 대한 무감각이 더 문제다. 과거엔 별 탈이 없었던 慣行(관행)에 제동이 걸려 문제가 됐을 뿐이란 얘기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落馬(낙마) 당시 앞으로 대한민국 교수들은 공직 진출시 논문 검증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죄 없는 자 돌로 쳐라'는 그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두 번째 희생자(?)는 이필상 전 고대총장이 됐다. 논문 표절과 중복게재는 만연한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지식인 사회에서 표절은 심각한 범죄이나 지금까지 관행으로 용서됐었다. 관행은 惰性(타성)과 이웃이다. 무조건 따르면 된다.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그래서 편리하다. 특히 기득권층에겐 아주 유용한 방어 機制(기제)다. 반면 변화를 바라는 측에겐 부도덕과 결합한 관행의 횡포는 감당하기 힘든 폭력이요, 장벽이다. 관행은 편한 만큼 대가를 요구한다. 정체와 퇴보다.

◇따라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시비가 붙는다는 것은 발전의 徵候(징후)다. 엄격한 잣대를 필요로 하는 분야가 지식인 사회의 표절만은 아닐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악습으로부터 벗어날 때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지 않을까.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