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 글(詩)은 왜 공짜인가?

입력 2007-03-03 09:03:02

내가 대학생 시절에 겪었던 일이다. 나는 학생회 학예부장을 맡아 문예지를 창간하게 되었는데 권두칼럼을 청마 유치환(靑馬 柳致環) 선생에게 부탁하기로 하고 대구여고 교장실로 찾아갔다. 청마선생은 써 주겠다, 안 써 주겠다는 말씀은 없고 대뜸 "원고료는 얼마나 주는데?"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당황하였다. 열악한 학생회 예산의 일부를 떼어내어 발간키로 한 학생문예지인지라 원고료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죄송하다는 말씀만 드리고 교장실 문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치환 교장 선생, 아니 시인 청마를 얼마나 원망하였는지 모른다.

'선비는 돈을 몰라야 하느니라'라는 가치관을 가졌던 나는 상당한 세월 청마 시인에게 가졌던 섭섭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보다 몇 년 전인 고등학생 시절, 나는 서영수 시인과 함께 청마 선생의 서문을 받아 처녀시집 '별과 야학'을 발간하였기에 너무 믿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에 겪었던 일이다. 그 후 나는 중·고등학교 교사에서 시작하여 여러 대학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는데 내가 가는 학교마다 나는 학교신문을 창간하고 교지를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문제되는 것이 원고료 문제였다.

원고료를 안 주면 안준다고 항의하고 많이 주면 많이 준다고 투정아닌 투정을 했다. 20여 년 전 포항공대 신문사 주간을 맡고 있을 때 해마다 신문사 운영위원회를 열면 그 의제는 대개 원고료 문제였다. '학교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데 왜 교수들의 원고에 원고료를 지불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원고료 지불 없이는 원고 받기가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이공계의 교수들이어서 그런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내가 시를 쓰다가 에세이류의 산문을 많이 쓰게 된 것은 원고료를 받기 때문이었다. 포항으로 직장을 옮기니 포스코를 비롯하여 포스코 협력업체마다 사보 같은 기관지를 발간하고 있는데 명사칼럼 같은 원고청탁을 많이 받게 되었다.

물론 원고료를 꼬박꼬박 받았다. 시는 청탁 받아도 원고료가 없는데 산문은 원고료를 받을 수 있어 좋았다. 그제서야 옛날 학창시절 청마 선생과의 겪었던 일을 이해하게 되었다. 몇 곳 사보에는 연재까지 하게 되니 몇 년 안가서 서너권의 에세이집을 간행할 수 있었다.

'하늘만평 사뒀더니' '별을 쳐다보며 살자' '인생을 아름답게' 등의 수필집은 다 포항에서 얻은 산물이다. 이 가운데 '하늘만평 사뒀더니'는 문화부의 우수도서에 선정되어 별도의 지원금까지 받았었다. 고등학교 때 첫 시집을 내어 문단의 화제거리가 되었던 나는 인생의 후반기에 에세이스트라는 칭호를 하나 더 얻게 되었다.

5년 전, 포항서 정년퇴임하고 대구로 이사 오니 다시 시를 쓰는 일이 생겼다. 물론 원고료는 없다. 주위의 교수로 있는 친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년퇴임하면서 기념문집들을 발간하는데 축시를 한편 써 달라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인연을 생각해서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축시라는 목적시는 주제가 뚜렷하기에 쓰기 쉬운 것 같지만 시인들은 대개 쓰기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런류의 목적시는 아무리 많이 써도 자신의 작품목록(업적)에는 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집 발간할 때도 빼는 것이다.

거기다가 원고료도 없이 써야하니 참으로 고역이다. 정년퇴임기념문집에는 축시 말고도 축화와 축서가 함께 실려있는데 축하 글씨를 써준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분들은 다 사례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축시는 왜 공짜인가?

축시의 가치를 인정하기 싫으면 축하그림(축화)과 축하글씨(축서)만 받으면 될 것인데 왜 축하시 까지 있어야 하는지? 지난 5년 동안 기념문집에 많은 축시를 썼는데 원고료를 보낸 분은 모 대학 토목과의 교수와 어느 중학교 교장선생 등 두 분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어쩌면 살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오늘도 원고료 없는 글을 열심히 쓰는 것이다.

김원중(시인·유네스코 경북부회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