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집안 고민' 어떻게 해결하세요?

입력 2007-02-17 07:03:35

숨어있던 갈등, 말 한마디에 터지고… 풀리고…

이번 설 연휴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은 무슨 얘기들을 나눌까? 올해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경제난을 걱정하는 얘기들이 많을 것이다. 갈수록 버거워지는 제사 문제와 어르신들의 장례 및 조상님들의 산소 걱정도 설 명절 가족대화의 단골 메뉴. 이럴 때면 으레 숨어있던 갈등들이 쏟아지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일가친척들을 오랫만에 만나는 기쁨도 반감되기 일쑤다. 명절 가족모임의 단골 얘깃거리인 제사, 상제(喪祭) 문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고민과 그 변화하는 모습, 전문가 견해를 참조해가며 집안갈등을 풀어보자.

▨ 장례 및 산소

지난 해 추석 성묫길에 나선 이강모(가명·53·대구 수성구 만촌동) 씨는 마음이 착잡했다. 오랜기간 찾지 않은 산소를 산짐승들이 파 헤쳐 봉분이 거의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조상님께 몹쓸 짓을 한 셈이 됐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이 씨는 이번 설 연휴에는 가족, 친지들과 함께 산소 관리 문제를 적극 고민해볼 것이라고 했다.

이창섭(가명·45·회사원) 씨도 지난 해 말 묘사에 참석하면서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화장에 매우 부정적이던 집안 어른들이 묘지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집안 납골당을 만들어 화장 후 안치하자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 시대 변화를 실감했다.

2005년에 화장(火葬)률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서는 등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사망자수 대비 화장건수를 일컫는 화장률은 지난 1970년 10.7%에 불과했지만 1991년 17.8%, 2001년 38.3%로 급격히 높아졌다. 보건복지부는 2010년에는 7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화장률이 높아지는 것은 화장에 대한 인식 개선과 더불어 제대로 돌보지 않아 방치되는 무연고 묘소들의 급증도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현재 전국 산야에 산재해 있는 2천100만여 기 묘 가운데 40% 정도가 무연고 묘라는 게 보건복지부의 추정이다.

최근 들어선 화장한 유골을 흙과 섞어 나무가 있는 산이나 잔디밭에 뿌리는 자연장(自然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목장으로 묘지난 해소와 산림보호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자연회귀형 장묘법으로 각광받는 추세다. 수림장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한 다음 유골을 나무 밑에 묻거나 뿌리는 것으로 스위스·독일·영국 등에서 대중적인 장묘문화다.

선조합동묘와 납골평장묘도 최근 들어 주목을 끌고 있다. 선조합동묘란 신위를 모시는 소목법(중국의 장법)과 한국의 암장법을 원용해서 5대조 이상의 선조를 한 곳에 모신 장묘법으로 유골을 추려 나무 상자에 넣어 작은 웅덩이를 파고 그대로 안장하던 옛날의 암장법을 응용했다. 화장과 매장을 혼합한 형태의 장묘법인 납골평장도 새로운 장묘 형태다. 화장한 유골을 나무함에 담아 봉분없이 묻고 와비(臥碑)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부산에 있는 UN묘지와 같은 매장법인 셈. 납골평장 묘역은 1기에 가로 세로 90㎝, 0.25평 정도다.

풍수지리 전문가인 홍승보(53) 명인철학원 원장은 최근 집안 어른들과 협의 끝에 앞으로는 매장 대신 화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묘지난에다 후손들이 산소를 관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묘의 위치에 따른 풍수지리상의 피해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서다. 홍 원장은 "조상들을 좋은 혈에 모시는 매장도 좋겠지만 그런 혈도 많이 없고 후손들이 묘지를 관리하기도 힘들어짐에 따라 납골평장을 생각하고 있다."며 "장묘문화도 시대 조류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제사 고민

40대 초반인 직장인 이경수(가명) 씨는 제사란 말만 나오면 골치부터 아프다. 5대 장손인 그는 1년에 아홉차례 제사를 모신다.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선친 등 기제사 일곱번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합치면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제사를 지내는 셈. 제사가 있을 때마다 대구에서 1시간을 달려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여의치 않고, 한 차례 30여만 원에 이르는 제수마련 비용도 부담스럽다.

이 씨는 "그동안 해오던 4대 봉사(奉祀)에서 고조부모나 증조부모 제사를 모두 지내지 않는 2대 봉사로 바꾸거나 할아버지 제사 때 할머니 제사를 같이 지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집안 어른들이 섭섭해하실 것이 분명하지만 시대 변화를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조상님들도 이해하실 것"이라고 했다.

떨어져 있는 형제들이 한 군데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춘다는 측면에서 제사는 분명 '아름다운 전통'이다. 하지만 노동의 문제로 넘어오면 제사를 위해서 노동력을 쏟아야 하는 주부들에게는 조금만 덜어주었으면 좋을 법한 집안의 대사(大事)이자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녹록찮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 최근 일부 가정을 중심으로 제사를 줄이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고 있다. 제사 시간을 당겨 지내는 가정도 늘고 있다. 밤 12시를 넘겨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완고한 어른들의 생각이 조금씩 엷어지면서 가정마다 자신들 가정에 맞는 풍습에 따라 혹은 가족들간 합의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제사 시간을 조절하고 있다. 또 갱, 탕, 적, 전 등 제사 음식을 간소화하는 가정도 많아지고 있다.

전통예절 전문가들은 "합사를 하는 경향이 옳은지 그른지 정확하게 가정의례준칙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바쁜 현대 생활에 맞도록 문화가 변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증조부모·고조부모 등은 묘사로 포함시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할머니 제사는 제삿일이 빠른 쪽에 합사시키면 큰 무리가 없다는 조언. 또 시간을 당겨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자정을 지나 오전 1시쯤에 지냈으나 현실적으로 힘이 들 경우는 돌아가신 당일 오후 9시 30분 이후 지내면 예법에 크게 어긋남이 없다."고 했다.

정재숙(가명·여·42) 씨 친정은 할아버지·할머니 묘를 납골당으로 이전하면서 제사를 한 번에 지낸다. 두 분 제사를 한 번에 하는 것만으로도 제사가 절반으로 줄었다. 박경자(가명·여) 씨 집은 할아버지·할머니 두 분 제사를 합친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윗대 조상들의 제사도 하루에 모아 지낸다. 그동안 큰며느리로 1년에 몇 번씩 제사를 지내는 것이 너무 힘에 부쳐 시어른들께 강력히(?) 건의했다. 제사를 줄이고 나서 마음도 편해져 제사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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