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감사관의 '감시 본능'…민원 개선 새바람

입력 2007-02-15 09:22:30

시민 감사관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지난 2003년부터 전국 모든 시·도에 '시민감사관' 제도를 도입해 생활 속 '불공정' 행정들을 개선하고 공무원들의 부정, 부패를 제보하는 길을 열어 놓으면서 행정 착오로 겪는 불편, 불만을 현장에서 찾아내 신선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명 감사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지난 5일 대구시청 홈페이지 '명예 감사관의 방'에 '청산'이라는 ID를 사용하는 시민감사관이 주택가 신종어린이집 문제를 고발했다.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젊은 맞벌이 부부들을 노려 육아 시설이나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주택가 대문에 간판만 내걸고 있는 신종 어린이집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는 것. 감사관은 "예고 없는 수시 점검을 통해 이런 어린이집들의 운영 실태를 밝혀 달라."고 대구시에 요구했다.

같은 날 ID 'sgy97'의 다른 감사관은 "이사철 쓰레기 폐기 비용"과 관련한 글을 올렸다. 이사 때 버리는 가전제품에 대해 미리 동사무소를 찾아가 폐기 비용을 지급한 주민들이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가전제품을 버리지 않고 다시 돈을 되돌려받고 싶어도 동사무소에서는 이미 처리가 끝났다며 돈을 돌려 주지 않는다는 것. 감사관은 "이는 환불을 제대로 해 주지 않는 불공정 민간업체와 똑같은 것인 만큼 대구시는 사실을 확인해 시민 편의 행정을 펼쳐 달라."고 제보했다.

감사관들의 활동은 단순한 불편 사항 개선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달 31일 허진영 감사관은 '숫자형 교통신호체계 도입'과 관련한 글을 홈페이지에 실었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교통 신호를 위반하지 않도록 신호 대기 시간을 실시간 자동 표시해 주는 디지털 숫자 기록 장치를 신호등에 설치하자는 것. 중국 항저우에서 숫자형 교통 신호를 직접 체험한 허 감사관은 관련 사진까지 찍어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시민감사관들의 이 같은 크고 작은 시민 불편, 불만 제보 건수는 지금까지 모두 397건. 첫해 48건에서 지난해 171건까지 늘었다. 임기 2년의 시민감사관은 교수, 의사, 퇴직 공무원, 주부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는데, 지난 1기 82명에 이어 현재 2기 80명이 대구 8개 구·군에 골고루 흩어져 활약하고 있다. 매달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는 10명의 수성구 감사관들은 제안 내용을 공유하고, 시정 반영과 관련한 오프라인 토론까지 벌인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대구 시민감사관들이 자치단체장들의 비리나 관련 단체들과의 부정을 밝혀내는 행정 감사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해 보다 전문성을 지닌 옴부즈맨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자치단체장이 감사관을 위촉하는데다 행정 정보를 수집하거나 조사할 권한이 아예 없어 생활 민원 개선 활동에 치우치다보니 공무원들의 부정, 부패를 밝혀내는 일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대구 시민감사관으로 활동하는 이헌구 영남외국어대 경찰경호행정학과 교수는 "생활 속 시민 중심 행정 개선에 감사관들의 크고 작은 역할이 있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며 "그러나 공무원 부정, 부패 방지라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렇다할 만 한 성과가 없어 대구시가 감사관들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과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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