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스트리트 댄스] (중)헐값 출연료

입력 2007-02-15 07:25:40

"우리 회사가 창립 기념 행사를 하는데 무대에서 공연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러죠. 최소 5명 이상 참가하겠습니다. 그런데 페이(pay)는 얼마나?"

"10만원이면 되겠죠?"

최근 어느 유력 기업이 한 댄스팀에게 초청공연을 의뢰하면서 빚어진 에피소드다. 댄스팀 관계자는 "10만원이면 5명의 밥값과 차비도 안나오는 돈"이라며 "공연 시간이 짧은데다 댄스팀원들이 어리다고 무시하는 처사"라고 허탈해하며 행사를 거절했다.

이는 댄스공연팀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공연의 특성상 공연 시간이 10여분 이내로 짧은데다 주로 10대가 주축을 이루다 보니 '무대에 세워주는 것만해도 감지덕지'라는 인식이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공연 기획자들 사이에 만연해있다. 아예 예산조차 책정하지 않고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

이 때문에 일부 유명 팀들을 제외한 댄스팀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고 무대에 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공연을 하고 돈을 떼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댄서는 "분위기를 띄워달라 해서 구두로 계약하고 무대에 섰지만 결국 출연료를 단 한푼도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약서가 없는데다 나이가 어려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한 것.

로킹 부문 최고 팀이라 불리는 오리지널리티 역시 힘든 시절을 겪었다. 리더 서경호 씨는 "지역 기획사들은 예산이 부족하다며 적은 돈으로 섭외한 적이 많았다"며 "다음 공연때 더 챙겨주겠다고 했지만, 언제나 마찬가지였다"고 회상했다. 유명세를 탄 지금은 팀이 우선권을 갖고 금액을 조율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정도 파워를 갖춘 팀은 대구에 2,3개 팀에 불과하다.

서 씨는 "어린 친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체로 신기해하고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싼 가격에 무작위로 무대에 오르고, 그것이 전체 시장을 흐리는 악순환이 되죠."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중 계약으로 돈을 챙기는 기획사도 있다고. 댄스팀에겐 '적은 돈을 줘서 미안하다'고 소액을 내밀고 주최측에선 많은 돈을 받아 챙기는 것. 이같은 기성세대의 행태는 댄서들에게 많은 상처로 남는다. 한 댄스동호회 관계자는 "3분 공연이니 즉석에서 대강 해달라는 말은 피아니스트에게 '즉석에서 작곡해서 연주하라'는 주문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잠깐의 춤을 보여주기 위해 수 년 동안 매일 10시간씩 맹연습을 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고 억울해했다.

댄서들은 이 모두가 '댄스는 예술이 아니다'라는 데 대한 선입관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댄서들은 이런 편견에 관해 매우 불쾌해했다. 오리지널러티 김동하 씨는 "우리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연습하며 기본기를 다져왔어요. 발레나 다른 장르의 춤과 다른게 뭔가요? "라며 반문했다. 일본·프랑스 등에선 스트리트 댄스를 발레나 현대 무용 등과 같은 춤의 한 장르로 인식하는 것과는 큰 차이다.

공무원들의 이에대한 인식의 한계는 더욱 심각하다. 댄스동호회 DIP 송창욱 대표는 매년 한차례 갖는 공연 장소를 섭외하느라 진땀을 뺀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해 각 구청 문화회관까지도 '순수 예술 공연만 무대에 올릴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아예 댄스 장르를 이해하려는 노력 조차 없다고. 송 씨는 "대관 규정도 중요하겠지만 스트리트 댄스라는 장르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문화도시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뼈있는 지적을 했다.

이 밖에도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댄스팀은 지역적 한계가 뚜렷하다. 비슷한 수준의 팀이라도 서울 이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출연료가 절반으로 뚝 떨어진다. '대구에서 왔다'고 하면 그저그런 눈으로 지켜보는 것. 이 때문에 내로라 하는 팀들은 모두 서울로 모이기 마련. 지역의 댄스 문화가 성장할 수 없는 원인이기도 하다.

서울은 이미 세계 최대의 비보이 대회를 개최하기로 하는 등 비보이 문화를 한류의 관광상품으로 포장, 발빠르게 움직이는 반면 대구는 아예 문화 취급도 하지 않고 있다. 댄스 관계자들은 "서울보다 한발 앞서나가 대구를 스트리트 댄스의 메카로 만든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데도 대구는 차별화된 문화 아이템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관변 축제 일색에서 탈피, 젊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스트리트 댄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T·G브레이커스 곽동규 대표는 "멋지고 값어치 있는 공연인데도 10~20만원에 공연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다쳐가며 얼마나 악착같이 연습하는지도 봐달라"면서 "먼저 좋은 시선으로 대해줘야 스트리트 댄스 문화도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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