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부산에서 개최된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단장 권호웅은 "선군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주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남측의 어느 누구도 북한에 안전도모를 요청하거나 기대하는 바가 없기에 실소를 금치 못할 주장이었다.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반보수대연합을 실현하여 올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매국적인 친미반동보수세력(한나라당)을 결정적으로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이념적 보수성을 지향하면서 대한민국의 다수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이기에 친미반동보수세력이 아님은 확연하다. 반동세력은 노동계급과 수령을 절대시하는 북한에게만 적용되는 용어일 뿐이지 민주적인 정당정치를 하는 대한민국에는 적용될 수가 없다. 굳이 한국사회에서의 반동세력이라 함은 북한과 야합해 민족을 분열시키면서 대통령선거에 개입하려는 자들임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최근까지 북한의 대남 비정상적 주장은 선군정치의 남한 활용과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선군정치의 대남 활용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점차 확대해 왔으며, 주로 공식적·비공식적인 대남 대화나 접촉 등에서 나타났다.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공세는 주로 남한의 선거 전후에 집중되어 왔다. 북한이 주장하는 선군정치의 논리적 토대는 '조선반도평화보장의 기본수단, 민족을 지키는 정치, 민족통일을 위한 정치' 등 세 가지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은 '친미친일을 체질화한 사대매국당, 진보와 민주의 극악한 교살자로서 극우파쇼당, 반북반통일의 민족분렬당, 부정부패의 파렴치한 도적패당' 등 네 가지를 논리적 토대로 하고 있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선군정치 활용은 다양하다. 남측의 대북 '퍼주기' 여론에 대해서는 남측 국민들의 선군정치 흠모론·인덕론으로 대응한다. 대남관계자들 가운데서 남측사정에 밝은 인사는 선군정치에 대한 남측의 부정적 반응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 자리에서만 형식적으로 말하고 비공식적 자리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최근 북한의 대남관계자들은 세대교체로 많이 젊어졌다. 이들은 남측의 사정을 잘 모르거나 때론 알면서도 상부에 대한 충성심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부의 충성 경쟁 차원에서 선군정치를 이용하기도 한다. 폐쇄되어 있는 군부집단이나 당관료집단은 경쟁적으로 선군정치를 옹호하고 있으며, 이는 선군정치에 대한 남측 및 국제사회의 부정적 시각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측면도 있다.
북한은 6.15 공동선언 이후 '민족공조'를 강조해 오면서 한나라당을 '민족공조'와 대립되는 '외세공조'로 규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나 고위 당직자, 특히 전여옥 의원 같은 대북강경론자에 대해서는 지명 인신공격도 서슴치 않는다. '전쟁의 화염', '핵전쟁 발발' 등 극단적 표현을 동원하기도 한다.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공세는 보안법·사학법 등 각종 쟁점법안이 국회에서 제기되거나 남측의 선거기간과 한미합동훈련시에 더욱 활기를 띤다. 남측의 국내 정치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표시일 수 있다. 남북회담시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은 남측회담 대표를 도와준다는 잘못된 판단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 남측이 내정간섭이라고 항의하면 공동보도문 작성시 한나라당 비난 관련 부문을 삭제하는 대신 자신의 입장을 들어줄 것을 요구하는 '협상용'으로도 활용한다.
선군정치의 대남 활용은 다분히 선군정치에 대한 남측 및 국제사회의 부정적 시각을 잘 모르는 무지로부터 기인한 측면이 있다. 최근 중국에까지 선군정치의 은덕론을 펼치면서 지원을 요구한 점이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지는 깨닫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덕목이다. 깨우침은 NGO(비정부기구) 등 민간급 교류인사들이나 전문가들의 활용이 효과적일 수 있다. 간결한 대응논리는 '총대는 정권을 잡고 유지할 수는 있어도 국민들의 윤택한 삶에는 결코 도움을 주지 못하며, 군은 정치를 떠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때에만 국민들과 함께 할 수 있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공세는 무지와 의도가 함께 드러난다. 남측 대통령이 여당이면 장관도 여당, 당국자들도 여당 당원으로 인식하고, 반대당인 한나라당을 비판하면 여당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당국의 즉각적인 대응이 효과적일 수 있다. 당국의 직접 대응은 정당정치의 올바른 인식을 북한에
심어주고 다양한 사회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양무진(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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