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뻐꾸기 정부'의 꿈

입력 2007-02-12 11:34:11

뻐꾸기는 자기 둥지를 틀지 않는다. 나뭇가지를 물어다 집을 짓는 노력뿐 아니라 알을 낳아도 멧새나 할미새 같은 남의 새 둥지에다 끼워 낳고 알을 품어주는 일도 없다. 부화된 뒤 새끼를 위해 먹이를 물어다 키우는 수고도 남에게 떠넘긴다. 한마디로 모든 노고나 뒤책임은 남에게 다 미뤄버리고 실속과 잇속은 저 혼자 공짜로 챙기는 무임승차형 얌체 조류다.

요즘 임기 1년을 겨우 남겨 놓은 盧(노) 정부가 연일 터뜨리는 무지개 꿈 같은 정책들을 보면서 '뻐꾸기'를 생각해 보게 된다.

희망이 담긴 비전을 내거는 것은 좌절과 실망이 큰 시대일수록 필요하다. 꿈은 불만족에서 나오고 만족한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 정부가 연일 내놓은 장밋빛 꿈들이 거창한 것은 그들 자신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지난 4년의 치적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갈망의 반동으로 볼 수 있다.

그게 1년짜리 꿈이든 10년, 20년이 지나야 이룰 수 있는 꿈이든 지금 당장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우리 처지에서는 개꿈이라도 꿈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임기가 1년만 남았다고 1년짜리 정책만 내놔야 되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5년짜리 정책만 내놓을 거냐는 노 대통령의 반발도 그런 꿈에 대한 희망과 기대심리를 겨눈 항변으로 볼 수 있다.

꿈, 비전, 20년짜리 정책, 다 좋다. 인정해주자. 그러나 지도자가 깃발을 들고 대중을 향해 외친 꿈과 비전에는 조건이 붙는다. 결혼해주면 백설공주처럼 아껴주겠다는 러브스토리식 비전과는 달라야 한다. 지도자의 비전은 정직하게 지켜져야 하고 현실성과 실효성이 입증되고 뒤따라야 한다.

최소한의 기초적인 노고와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과연 노 정부의 꿈과 비전에는 노고와 책임이 보이는가. 정부가 내놓은 주요국책사업은 25가지다. 그 꿈들을 다 이루려면 2천2백51조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2천251조 원이면 우리나라 국가예산 15년치를 넘는 액수다. 거기다 노 정부 들어서고 늘어난 국가부채만 해도 150조 원 안팎이다. 앞으로 1년 더 끌고 가면 얼마나 더 빚을 낼지 알 수 없는 판에 2천조 원이 넘는 꿈 비용은 感(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뻐꾸기 날리기'로 끝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당장 임신 출산부터 노년까지 국민건강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 주겠다는 '국민건강전략' 꿈만 해도 1조 원대의 초기 재정 조달 계획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다음 정부가 대든지 또 새 빚을 내든 세금을 올려 해결할 수밖에 없다. 10년 내에 90조 원을 펀드로 모아 340만 호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꿈도 주택펀드에 90조 원을 내놓을 만큼 국민들 호주머니가 두둑해지지 않는 한 다음 정부와 남의 호주머니에 떠넘기고 댈 수밖에 없다. 뻐꾸기가 떠오르게 되고 꿈과 비전의 실효성과 현실성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지난 4년간 돈 벌 능력이 시원찮다는 게 검증됐고 돈 벌 생각(경제 진작)보다는 빚내고 세금 올리는 손쉬운 길을 택해왔다. 뻐꾸기의 무임승차를 닮아온 셈이다.

예산과 땀은 다음 정부와 국민 호주머니에 내맡기고 그들은 대선을 염두에 두었든 아니든 갖가지 무지개를 띄워놓고 민심만 품어보겠다면 '뻐꾸기 정부'란 비판과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1년짜리 꿈이라도 못 미더운 꿈 백 가지보다 100년짜리 꿈 하나도 믿을 수 있어 보이는 꿈을 내걸어야 참민심을 얻는다.

정권의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꿈 하나도 제대로 믿음이 가게 내걸지 못하는 '아마추어 정부'란 소리 듣기 싫다면 남은 임기나마 믿을 수 있는 꿈을 내걸고 분발해 주기를 기대한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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