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일본 열풍

입력 2007-02-08 16:28:49

지금 우리 대중문화시장을 살펴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줄 모르다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 형국이다. 4차에 걸친 일본문화 개방에도 별다른 충격파가 없었던 시장이었지만 어느샌가 일본문화가 아예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만화, 소설, 음악, 영화, 드라마까지 장르불문이다. 겉포장만 요란하게 떠들었던 일본 속 '한류'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겨울연가'의 호평에 취해 잠시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 '일류'는 조용하면서도 깊숙히 우리 안을 파고들었다.

출판가에 불어닥친 일본 소설 바람은 눈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서점을 찾으면 일본소설이 넘쳐난다. '공중그네'나 '플라이 대디 플라이'처럼 10주 이상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일본소설이 심심하지 않게 등장할 정도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100위권을 살펴보면 한국 소설은 고작 23권이 들었던데 비해 일본소설은 31권이나 상위에 랭크됐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일본 문학작품은 509종 153만부로, 455종 123만부를 기록한 미국 문학을 앞섰다고 한다.

출판계에서는 일본 소설이 붐이 2004년 에쿠니 가오리와 쓰지 히토나리가 쓴 '냉정과 열정사이'가 60만부 넘게 팔리면서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후 가타야마 교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320만부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상실의 시대'가 가지고 있던 최고 일본도서 판매기록 239만부를 가볍게 넘어섰고,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요시다 슈이치 등 새로운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소설이 이렇게 인기를 얻는 비결은 '가볍고 신선하다'는 것. 박희정(30'여)씨는 "일본 소설은 1인칭 주인공에 대한 개인사적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 솔직한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우리 문학이 386 학생운동권 세대가 겪는 시대사적 갈등, 분단, 이념 등에 깊게 발담그고 있는 사이 독자들의 관심은 '개인'과 '유머'로 옮아가는 사실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결과다. '공중그네'라는 책 한권만 봐도 이런 경향을 뚜렸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 책의 인기 비결은 '개인의 강박증'이라는 무거운 소재에다 만화적 요소를 도입해 가벼운 문장과 황당한 글 전개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음악에서도 '제이 팝'(J-POP'일본음악을 지칭하는 용어)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장르가 확고부동하게 자리잡았다. J-POP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엑스재팬(X-JAPAN)'은 이미 해체됐음에도 한국에서 광범위한 팬 층을 거느리고 있으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주제곡으로 리메이크 된 박효신 '눈의 꽃'이 인기를 끌면서 나카시마 미카의 원곡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또 지난해 11월 열린 일본의 5인조 밴드 '아라시'의 내한공연은 8만 8천 원이라는 부담스런 가격에도 불구하고 예매시작 1시간만에 티켓이 동이나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 때는 일본 음악 수입 금지 조치로 불법복제판을 구해 숨어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일본 음악들이 이제 수입개방 조치로 폭 넓은 마니아층을 형성해가며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문화는 경쟁력이다. 패권을 차지한 나라가 문화를 퍼뜨리고, 문화의 힘이 있는 나라가 패권을 차지한다는 것은 세계사에서 익히 배워왔던 사실이다. 이제와서 '일본문화 불매운동'이라도 벌이자는 말이 아니다.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일본 문화의 힘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 문화계의 고민일 것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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