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디를 가도 종교 없는 종족이 없다고 하지요. 그런데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는 그 '숭고한' 종교가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을 피 흘리게 합니다. 테러도 반테러도 모두 '거룩한' 신의 이름으로 자행됩니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삼소회(三笑會)의 스님, 수녀님, 교무님들과 함께 종교의 성지들을 찾아 순례한 현직 기자의 체험 여행기입니다. 삼소회란 '세 종교가 함께 웃는다'는 의미라지요.
그들은 인도의 강가강과 녹야원을 둘러보고 찬다니초크의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 침묵명상도 합니다. 영국 퀘이크교도의 공동체인 우드불룩과 성공회 성당도 방문하고 모스크에 입장하기 위해 목도리로 히잡을 만들어 얼굴에 쓰기도 합니다. 간디의 동상 앞에서 비폭력의 의미를 물으며 '모든 근본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세력이야말로 평화의 길에 놓인 지뢰'임을 생각합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것은 슬픈 아이러니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스님이 눈물을 흘리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선악놀음'의 현장에서 진짜 악이란 종교가 다른 상대가 아니라 '생명을 죽이는 행위'임을 알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쌓아놓은 높은 장벽 앞에서 여성 수도자들은 통곡의 심정으로 평화의 기원문을 읽고, "강한 세력 아래 굴종하고 그 편에 서는 것을 평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저자는 뜨거운 목소리로 말하기도 합니다.
걸러지지 않은 감정과 정화되지 않은 욕망으로 저마다 진리와 정의를 외치는 세상입니다. 종교적 진리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터전에 따라 꽃이 되기도 하고 시커먼 화염이 되기도 하나 봅니다. 물리적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따라 인간 심성이 다를 수밖에 없음도 이해해야겠지요. 하지만 모든 만물과 인간이 서로 교직되어 상호의존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기주의적 신앙과 배타적 교리는 당연히 갈등과 싸움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터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 참 좋은 말이긴 하지만 왠지 공허하고 낡아 보입니다. 종교의 교리만큼이나 너무 오래 반복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된 탓일까요? 사랑과 용서. 그것은 머리 속에 경직된 이성적 언어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다가가야 하는 체험일 터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저토록 악을 쓰면서 지켜야할 '진리'도 배척해야 할 '비진리'도 없는지 모릅니다.
연꽃은 높고 청정한 곳에서가 아니라 가장 낮고 더럽고 탁한 곳에서 가장 향기로운 꽃을 피웁니다. 사랑과 용서(자비) 또한 나보다 더 힘든 곳,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에서야 비로소 친견할 수 있는 눈부신 '신의 미소'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무료급식소 앞 길게 줄지어 선 노숙자들 틈에서 예수를, 허름한 쪽방촌이나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는 농부에게서 부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성전(聖殿)은 웅장한 교회나 성당이나 절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 있는 바로 그런 곳이 아닐런지요.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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