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판잣집서 손자 둘 키우는 최원자 할머니

입력 2007-02-07 08:57:00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이 구멍 난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스며듭니다. 우리 세 식구가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2평 남짓한 방은 가로등 불빛에 겨우 환해집니다.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한 손주 성훈(가명·14)이와 성지(가명·12·여)는 어린 나이에 벌써 삶의 고단함을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잠들 수 없는 깊은 밤이면 못난 할미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발 아이들의 고통을 저에게, 눈 감을 날이 머지 않은 저에게 모두 돌려주십시오.'

성훈이는 눈을 뜨자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학교가 갑갑하다며 벌써 8개월째 방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합니다. 타이르고 윽박도 질러봤지요. 하지만 제 말은 소용이 없습니다. 아비, 어미도 버렸다는 사실을 이제 알아버린 탓이겠지요. 아이들은 햇볕 속으로 나가길 싫어합니다. 부모의 사랑마저 사라져버린 세상에 그 어떤 희망도 없다는 듯, 아이들은 오늘도 단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여름이면 온갖 지린내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재래식 공동화장실을 써야하는 것도, 언제나 허리를 반쯤 굽히고 대문을 열어야 하는 것도, 한겨울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얼음장 같이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것도···. 모든 것이 죄 많은 할미 탓 같아 이젠 윽박지르지도 화를 내지도 못합니다. 제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손주들의 가슴 속엔 상처 뿐일테니까요.

애들 아범(45)은 5년 전 집을 나갔습니다. 순하디 순한 놈이었는데 어찌 그리도 복이 없는지···. 트럭을 몰다 사고를 내 몇 백만 원식 물어줘야 했고,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 재산을 다 까먹었지요. 하는 일마다 틀어지고 깨졌습니다. 이런 운명도 있냐며 울기도 수십 번, 결국 아범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취를 감춰버렸지요. 며느리도 이내 사라졌습니다.

비 새는 판잣집에 사는 부모없는 가난한 아이들, 웃음만은 잃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누구보다 밝고 튼튼하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낮빛에서 절망만이 드리워지더군요. 성지가 묻더군요. "할머니, 쥐 안나오는 집으로 우리 이사가면 안돼?"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렇게 고운 내 새끼들의 살갗엔 쥐가 할퀴고 간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습니다. 죄책감으로 하얗게 밤을 새웠습니다.

이 악물고 집을 옮겨보려고 했습니다. 점점 차갑게 돌변하는 성훈이, 집을 두려워 하는 성지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지만 발버둥칠수록 가난의 수렁은 더 깊어지더군요. 몸뚱아리라도 성하면 파출부라도 하겠지만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을 쓰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지요. 아범이 몸서리 치도록 미웠습니다. 차라리 죽지, 죽고말지. 그래야 정부보조금으로 지 자식들 살 만한 집이라도 구할 수 있지,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을 원망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일도 있는 것인지, 제 아들에게 차용증을 써 준 것이 잘못돼 저는 신용불량자가 됐답니다.

6일 오후 7시쯤 중구 대봉동의 한 허름한 판잣집. 성훈이는 구부정한 자세로 모니터를 응시하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관절염으로 다리를 저는 최원자(가명·67) 할머니는 손자를 피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성훈이가 점점 변해가네요. 어린 것 가슴 속에 무슨 응어리가 저리 졌는지,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데···."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성훈이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어두컴컴하고 좁아터진 방 안에서 올려다보니 구멍뚫린 천장으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언제 바꿔 끼웠는지 모를 형광등은 자꾸 깜빡거렸다. 성훈이에게 "학교를 왜 가지 않느냐."고 묻자 "답답하니까."라고 짧막하게 답했다. 일어서보니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길게만 느껴지는 이 방에서 성훈이와 성지, 할머니는 절망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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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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