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렇게 투명하게 빛나는 밤하늘은 어릴 때 이후론 처음 보았다. 맨발로 길을 걷고 맨손으로 밥을 먹지만 라오스 사람들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빛만큼 밝았다.
나는 이 해맑은 영혼의 나라 그 중심에 서투른 이방인으로 서 있었다. 선글라스에 봉사활동을 표시하는 재킷을 입고 그렇게 낯설게 서 있었다.
"싸바이디, 안녕하세요." 그곳 라오스사람들은 그렇게 인사한다. 그들은 그 말을 할 때마다 웃으며 수줍어한다. 인사를 하고 합장을 하는데(한국에서의 진지한 그런 합장은 아니다) 자동으로 쑥 손을 내밀었던 내가 민망했다. 싸바이디. 그렇다. 그렇게 나의 언어는 바벨탑 콤플렉스를 재현하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미 귀한 손님이 되어 있었다. 경북대학교 해외 봉사활동의 이름으로 우리 스무 명은 그들의 손님이 되어 있었다. 일년 내내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던 사람이 한 번 봉사활동을 한 것이 뭐 대수겠냐 하는 느낌도 들지만 자발적으로 가서 체험하였던 라오스의 삶은 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맨 처음 그들을 만나기 위해 방비엥의 남파우 초등학교에 도착하였을 때 우리는 눈물이 콱 올라오는 것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바닥이 그냥 흙바닥이었고 대나무 줄기로 짠 판 같은 것이 칸막이인데 내가 60년대에 학교를 다녀도 그런 데서는 다니지 않았을 정도다. 그나마 다 떨어지고 교사들이 쓰는 테이블은 다 구멍이 나 있었다. 함석지붕은 다 삭아 있었고 천장을 받치는 나무 또한 무너질 것 같았다. 라오스가 세계 10대 빈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 학교 아이들은 맨발로 걸어 다니고, 얼굴은 더럽고 키가 작았다. 몸엔 남루한 옷이 걸쳐 있고 학교라는 게 임시 막사 비슷하여 아무도 그곳이 학교라고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손님이 된 이상 무엇인가 필요하다면 그들과 함께 일하고 웃고 나누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이곳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3시간 거리에 있고, 방비엥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오지이다. 첫 날 우리는 통역해주시는 선교사님과 우선 나이반이라는 동네 면장과 학교의 교장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남파우 초등학교 교실 2동을 짓고 함석지붕 2동을 수선하고 축구 골대를 만들고 필요한 학습자재를 사주기로 했다.
건축재를 사러 왕 위엥(서양사람들은 방비엥이라 한단다)과 후아이모의 시장을 다 뒤졌다. 노력봉사 이외에도 우리들은 교육봉사를 했다. 알지 못하는 영어와 태권도, 한국어, 레크레이션을 하느라고 필수불가결한 라오어를 습득해야했고, 팍치 같이 먹기 힘든 그 나라 음식에 적응해야했고, 낮이면 30도 이상 밤이면 0도까지 떨어지는 기온에 익숙해야 했다. 저녁이면 우리는 아프리카의 부족처럼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그날의 반성과 내일의 계획에 우리의 피로를 불살라야 했다.
봉사라는 것이 원래 주는 것인데 사실 받아온 것이 더 많다. 그들에게서 사랑을 받았고, 우리들의 기억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워낙에 행복에 겨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받은 것이 큰 선물이다. 우리의 젊은이들 혜성, 진, 혜림, 현이, 혜정, 효진, 세정, 유정, 혜정, 은정, 진용, 규정, 승희, 현명, 상현, 창석, 민식, 팀장 락우, 그리고 박 선생님 모두 그런 느낌이리라. 특히 우리를 후원해주었던 KT 대구본부, 마음과마음신경정신과, 유 선생님, 라오스의 KOLAO회사, 그리고 김 선교사님에게 그런 감사함을 돌려 드리고 싶다.
이런 우리의 노력이 그분들의 마음에 닿았는지 마지막 운동회엔 모든 학부형과 주민이 와서 함께 즐기고 우리에게 민속적인 축복의식을 행해주고 맛있는 고기와 술로 대접을 해주었다. 물론 손으로 먹고 다른 사람이 빤 대나무 빨대를 같이 빨아야 했지만 우리의 행복은 가득하였다. 컵짜이더(감사합니다), 폽깐마이(우리 다시 만나요). 정말이지 라오스는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변학수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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