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장거리 코스 개척자 배병만 씨

입력 2007-02-03 07:01:29

"잠 못드는 산행길에 미쳤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새로운 산행문화를 개척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장거리 산행코스를 개척,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배병만(41) 씨. 그가 개척한 산행코스를 보면 '미친 사람'이란 표현에 절로 수긍이 간다. 잠을 자지 않고 짧게는 11시간, 길게는 65시간이나 산행을 한다는 게 일반인들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 씨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개척 산행코스 가운데 하나인 영남 실크로드. 운문산, 가지산, 영축산 등 영남알프스의 수많은 고봉을 잇는 장장 92km의 코스다. 크고 작은 봉우리 110개를 넘으며 한바퀴 돌아오는 원점형 산행길로 평균 45시간 정도가 걸린다. 실제 걷는 거리는 110km에 이른다.

코스가 태극 모양과 같아 이름 붙여진 지리산 태극종주길도 배 씨가 개척했다. 배 씨는 "초창기 무박 태극종주길은 미친 짓이란 얘기를 들었으나 지금은 대표적인 장거리 산행코스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얘기했다. 1천m가 넘는 봉우리를 밟으며 지리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단다.

배 씨가 운영하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J3클럽 카페(http://cafe.daum.net/J3C1915)에는 10여 개의 산행코스가 자세하게 안내돼 있다. 클럽의 이름은 지리 3대 종주에서 따왔으며 24km부터 160km에 이르는 코스까지 다양하다. 화왕산, 설악산, 덕유산, 월악산 등 이름있는 산들이 망라돼 있다.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권도체육관을 운영하는 배 씨가 산행코스 개척에 나선 것은 2002년. "군에서 제대한 20대 중반에 친구를 따라 지리산으로 산행을 간 뒤부터 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어요. 그 후에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나서 산을 찾는 이들을 위해 무박 장거리 산행코스를 새로 개척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산행코스를 개척하는 데는 우선 지도를 보고 새로운 코스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어 해당 지역의 산꾼들에게 연락해 관련된 정보를 수집한다. 그 다음은 4~5명 정도로 산행팀을 꾸려 직접 코스를 밟는다.

"산행코스를 개척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식수를 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10km당 1곳씩 식수를 구할 수 있어야 산행코스로 정하지요." 식수가 나오는 곳을 찾으면 파이프를 박아 식수를 쉽게 뜰 수 있도록 한다. 한달간 산악마라톤 등을 하며 체력을 다진 후 장거리 산행코스 개척에 나선다. 얼마전까지는 한 달에 4~5차례 산행을 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는 게 배 씨의 귀띔.

배 씨와 J3클럽 회원들은 매월 셋째 주에 무박 장거리 산행을 떠난다. 현재 카페 회원은 300여 명. 연령대는 4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까지며 회원 가운데 5% 가량이 여성이다.

"거의 모든 회원들이 백두대간 종주를 한 분들이어서 무박 장거리 산행을 하는 데 체력적으로 지장이 없다고 봐야지요. 제가 개척한 산행코스를 다녀오신 분들이 산행의 즐거움을 맛봤다고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그가 개척한 산행코스를 보고 산행을 나선 이들의 문의전화가 하루 30통에 이를 때도 있다.

잠도 자지 않고 장거리 산행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원초적' 물음에 배 씨는 환한 웃음부터 지었다. "장거리 산행을 하려면 체력은 물론 강인한 정신력과 야간산행에 따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 어려움을 이기고 코스를 완주하고 나면 무한한 성취감이 몰려오지요." 배씨는 앞으로 울릉도 성인봉과 제주도 한라산 등 장거리 산행코스를 개척하는 데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 배 씨의 2007 산행 계획

배 씨가 새로운 산행코스를 개척하는 데에는 임의규, 전승희, 유종식, 성 환 씨 등이 꼭 참석한다. 마음이 맞는 이들과의 산행길이 즐겁다는 게 배씨의 얘기다.

또 J3클럽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매월 셋째주에 장거리 무박 산행을 나선다. 1월에는 월악산 환종주(45km)를 다녀왔다. 올해 산행계획을 보면 "대단한 사람들"이란 얘기가 절로 나온다.

2월=지리화엄사~대원사 종주(46km), 3월=거제도 남~북 종주산행(60km), 4월=실크로드 환종주(92km), 5월=설악산 태극종주(47km), 6월=덕유산종주(47km), 7월=방태산 환종주(38km), 8월=지리왕복 종주(56km), 9월=지리태극종주(90.5km), 10월=땅끝종주(60km), 11월=수도~가야종주 70km.

※ 장거리산행 주의점

잠을 자지 않고 장거리 산행을 하는 데에는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는 게 배씨의 얘기다.

장거리 산행인 만큼 일반적인 등산보다는 배낭도 가벼워야 한다. 몸무게의 10분의 1정도가 적당한 배낭 무게라는 것.

산행에 앞서 체력을 다지는 등 사전 준비도 철저해야 한다. 한 달전부터 헬스클럽을 다니거나 산악마라톤을 하는 등 충분한 체력을 갖추는 것이 안전한 산행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배 씨는 강조했다. 또 야간에 산행을 하기에 졸음을 이기는 것도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는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 배병만 씨가 개척한 대표적 코스 2곳

배 씨가 개척한 산행코스 가운데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코스는 '영남 실크로드'와 '지리 태극종주'다.

▶영남 실크로드=영남알프스의 수많은 고봉을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따라 종주할 수 없을까하고 생각 끝에 만들어낸 장거리 코스. 가지산을 중심으로 해서 운문지맥, 낙동정맥길, 영축지맥 일부 구간을 연결한 코스로 92km를 가는 동안 크고 작은 봉우리 110개를 넘어야 한다. 영남알프스의 가을 억새가 비단처럼 곱게 빛난다해서 실크로드란 이름을 붙였다. 구체적으로는 남기리-비학산-보두산-낙화산-중산-오치령-육화산-구만산-인재-억산-운문산-가지산-석남고개-능동산-배내봉-간월산-신불산-영축산-에덴벨리 골프장-배태고개-매봉-금오산-당고개-구천산-만어산-산성터-산성산-날머리 코스다.

▶지리 태극종주=처음에 '미친 짓'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현재 산악인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덕산-동남능선-밤머리재-동부능선-천왕봉-주능선-성삼재-사북능선까지 90.5km의 장거리 코스다. 느리게 걷는 사람은 65시간, 평균 43시간, 배 씨와 같은 전문가들은 29시간에 주파한다고 한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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