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천194m)를 등반할 때였어요. 난코스인 남벽을 통해 정상 도전에 나섰는데 악천후를 만나 절벽에 매달려 13박14일을 보냈습니다. 누워서 자지도 못하고 앉아서 잘 수밖에 없었어요. 체력이 떨어지고 정신도 가물가물해 환청과 환각에 시달렸지요. 절벽 밑으로 식량과 장비가 떨어지는 데도 주울 기운조차 없었으니까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킨리 정상을 밟는 데 성공했지만 이태순(41) 씨는 오른쪽 2개, 왼쪽 3개 등 동상에 걸린 발가락 5개를 잘라내야 했다. 그는 "어렵고 힘든 데에 도전하는 것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고산 등정에 계속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런 연유에서 이 씨의 휴대전화 뒷 번호는 매킨리의 해발고도와 똑 같다.
3천m 이상의 산을 올라가는 고산 등정. 죽음을 떠올려야 하는 힘든 순간을 맞딱드리면서도 만년설로 뒤덮인 고산의 매력에 푹 빠진 40, 50대들이 많다.
다음 달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천848m) 등정에 나서는 최태환(대구등산학교 교무부장) 씨도 마흔일곱살이다. 대구YMCA산악회 창립 30주년, 한국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기념한 이번 원정대 대장을 맡은 최 씨는 "체력이 되는 한 정상에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에베레스트 원정을 앞두고 최 씨는 6명의 대원들과 함께 체력·정신력 훈련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보통 원정에 나서기 전 1년6개월 전부터 체력훈련을 한다. 매주 화요일엔 대구 신천의 상동교에서 앞산 정상까지 1시간 산악구보를 하고 목요일엔 신천에서 1시간30분 동안 달리기를 한다. 주말에는 팔공산, 앞산, 비슬산 등에서 17시간 이상씩 걸리는 무박산행을 하고 있으며 지난 달 31일부턴 제주도 한라산에서 4박5일동안 설상훈련에 돌입했다.
"희망의 언덕을 오르는 길일수록 더 가파르고 곳곳에 굴곡도 많다고 한 것처럼 에베레스트 원정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디딤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 목표는 전 대원이 안전하게 원정을 마치는 것이고, 두 번째가 정상 등정입니다."
올해로 대구YMCA산악회 입회 20년을 맞은 최 씨는 대만 옥산(3천997m)을 등정했다. 로체, 초오유에 갈 기회도 있었지만 공무원을 하다보니 기회가 닿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합천 매화산에서 조난을 당해 죽을 고생을 한 후부터 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며 "에베레스트 원정 등반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매킨리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등정에 성공한 마흔한살의 이태순 씨는 1985년 한국산악회 대구지부에 입회하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힘든 코스를 통해 고산 등정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년에는 인도 히말라야 쉬블링(6천543m) 북동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악천후로 5천900m에서 되돌아왔다. 또 1999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동벽 루트로 등정에 나섰으나 6천500m 지점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씨는 "어렸을 때부터 오지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던 게 고산 등정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며 "쉬블링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라고 얘기했다.
역시 마흔 한살의 차진철 씨는 지역을 대표하는 고산 등정가. 1991년 매킨리 등정을 시작으로 1994년에는 초오유(8천201m)와 시샤팡마 중앙봉(8천10m) 2개 봉을 연속으로 등정했다. 또 충모강리(7천48m), 릉보강리(7천95m), 남극 빈슨매시프(5천140m), 가셔브럼1(8천68m), 가셔브럼2(8천35m) 등도 발아래 뒀다. 2004년엔 대한민국산악상 고산등반상을 받았다.
그는 "원정대장과 정상 도전을 같이 맡은 경일대 개교 40주년 기념 2003년 가셔브럼 등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악천후를 만나 식량과 물이 끊어질 무렵엔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고 얘기했다.
차 씨는 지난 달에는 한국 로체(8천516m) 청소년 챌린저 원정대 등반대장을 맡아 청소년 18명과 원정을 같이 다녀왔다. "5천545m지점까지 올라갔는데 16명이 등정에 성공했어요. 우리 청소년들이 체력은 물론 정신적으로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차 씨는 고산 등정의 매력을 만년설에서 찾았다. "산이 높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람들은 1년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며 "전화나 TV 등 문명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떠나 자유로움을 느끼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고산 등정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경일대 산악회 이름으로 8천m 이상 14좌를 완등하는 게 차 씨의 목표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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