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시평] 일류도시로 가는 길

입력 2006-12-27 09:01:19

얼마전 내과진찰를 위해 대구에서 가장 우수한 의료기관중 하나라는 모대학병원을 찾았다. 상당한 진료비를 치르고 게다가 특진까지 신청했다. 무려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순서가 돼 진료실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진료실안이 너무 정리가 안돼 있고 어수선하지 않은가? '혹여 진료기록이 다른 환자와 섞이지는 않을까'하는 염려가 들 정도였다.

물론 많은 환자를 상대하다보면 충분히 그럴 수가 있다고 이해는 한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다 들어와 옆에 서서 난감해하는 환자를 두고 얼굴도 제대로 쳐다 보지도 않은 채 불쑥 한 마디 내뱉는다. "어디가 아파서 왔나요. 검사를 해보고 판단해 봅시다." 고작 몇마디만 나누고 병원문을 나서면서 황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구의 의료수준이 이정도이니 서울로만 몰리는 환자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서울 대형병원의 경우 지방에서 올라오는 외래환자 비중이 30%에 달한다고 한다.

대구에서 유일한 특 1급호텔. 차를 몰고 호텔로 들어가려면 호텔입구에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우선 주차 티켓을 끊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업무상 해외 여러나라의 많은 일류호텔을 다녀 봤지만 생소한 모습이다. 주차장 부족이 원인인듯 하지만 고객보다는 지나치게 호텔 입장만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외국바이어와 저녁약속이 있어 이 호텔식당에서 와인을 주문하다가 또 한번 놀랐다. 우리나라도 와인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해 많은 사람들이 최근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이 호텔에서는 웬일인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이름만 대도 쉽게 알 수 있는 대중적인 와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유럽의 특정국가 와인만 서비스된다고 했다. 종업원에게 물어봐도 호텔방침이라고 하니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이 또한 고객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잦은 국제규모 행사를 치르면서 호텔 객실부족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중 하나지만 대구를 대표하는 호텔의 서비스가 이 정도라니 한숨만 나온다. 호텔은 바로 그 도시의 첫 인상을 좌우하는 곳이 아닌가.

출퇴근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트를 타면 초등학생 어린아이들을 가끔 마주친다. 어린아이들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밝은 표정으로 친근하게 먼저 인사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해 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어린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대구의 희망이 있다. 머잖아 대구사람들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지 모르겠다.

해마다 대구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은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실제 대구에 머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KTX개통 이후 서울과 지방도시간의 체감거리가 대폭 줄어들어 의료, 유통, 문화, 교육에 이르기까지 마치 블랙홀처럼 서울로 흡수되고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구는 이제 가깝게는 서울과 경쟁해야 하고 밖으로는 싱가포르, 도쿄, 뉴욕과 같은 일류도시와 경쟁해야 한다. 대구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은 도시 인프라와 같은 하드웨어를 구비하는 것보다 시민친절도나 서비스마인드 같은 소프트웨어를 먼저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최근 대구시 공무원들도 전화받기와 인사예절부터 서비스마인드를 높이기 위해 변화된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관공서 뿐만 아니라 병원, 호텔 등 공공장소에서 더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우리 시민들도 이제 서비스마인드에 대한 인식부터 과감히 바꿔야 한다. 대구의 친절도와 서비스 마인드를 점차 높여 나가 사소한 것부터 고객의 입장에서 실천해 개선한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일류도시의 길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박형도 이시아폴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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