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청사 '33년 문지기' 정년퇴직

입력 2006-12-27 09:06:12

40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부 중앙청사 정문을 지켜온 사람.

세종로 중앙청사 강여형(姜麗馨.57) 방호실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지난 73년 3월 정부청사 방호원으로 공직에 들어온 강 실장이 33년10개월에 걸친 공직생활을 마치고 27일 정년퇴직한다.

첫 근무지인 옛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에서 현재의 중앙청사에 이르기까지 강 실장이 문 앞에서 지켜본 국무총리급 고위공직자만 해도 모두 46명에 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의 김종필 11대 국무총리부터 지금의 한명숙 37대 총리까지 모두 27명에다 중간중간에 총리대행을 했던 서리까지 포함해서다.

퇴직에 앞서 강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년퇴직의 소감을 묻자 "시원섭섭해요"라고만 짤막하게 답변했다.

'무슨 소감이 그리 짧으냐'고 묻자 "나같은 사람이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문지기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는 겸양이지만 재차 '소감 풀이'를 채근하자 "문지기로서 큰 잘못없이 청사를 떠나게 되니 시원하고, 막상 정들었던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섭섭할 뿐"이라고 했다.

재직중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박 전대통령 저격사건인 '10.26', 70년대말 군사쿠데타인 '12.12', 광주민주항쟁의 도화선이었던 '5.17' 등 격동기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들을 꼽았다.

강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이어 군인들이 광화문통을 가득 메우면서 무슨 일인지도 모른채 겁에 질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총리가 "여럿있다"고 했다.

우선 "김종필 전 총리는 위세도 대단했고 총리를 두번씩이나 해서.."라고 했고, 노태우 대통령 당시 강영훈 전 총리에 대해선 '역대 총리로는 처음으로 중앙청사 방호원 사무실을 직접 찾아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배려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또 박태준 전 총리는 출.퇴근시 방호원들이 중앙청사 로비의 큰 문을 열어놓자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직원들이 다니는 조그만 회전문을 이용했던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첫 여성 총리에 임명돼 관심을 모았으나 끝내 서리 꼬리를 떼지 못한 장 상 서리도 빼놓을 수 없다는게 강 실장의 전언.

"장 서리는 서리로 재직하는 짧은 기간에 여성이면서도 대장부의 면모를 보여줘 인상깊었다"면서 "결국 청사를 떠나면서 '총리가 되면 여러분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려 했는데 아쉽다'면서 오히려 미안해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이어 역시 김대중 정부 당시인 장대환 서리 때 한 신문이 '장 상-장대환'에 이은 '서리정국'을 풍자해 중앙청사 방호원들이 서리가 출근하는데도 '들어오거나 말거나' 식으로 졸고 있는 만평을 싣자 언론에 대해 처음으로 큰 실망을 했다고 강 실장은 꼬집었다.

"아무리 문지기이지만 책임감 하나로 일하고 있는데.."라는게 이유다.

하지만 강 실장은 정부가 에너지 절약의 일환으로 '차량 10부제'를 시행했을 당시 급한 취재 때문에 부제 적용을 깜빡 잊은 채 청사로 들어오는 언론사 차량에 대해서는 "신문이 10부제로 발간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례적으로 편의를 제공, 현장기자들로부터는 항상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강 실장은 부인 심정순(沈貞順.56)씨와의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는데 모두 공무원이다. 장남은 정보통신부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는 은평소방서에서 소방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강 실장은 정년퇴임식을 마친 뒤에는 경기 고양시의 집으로 돌아간다. 고양시는 고려말때 이성계의 조선조 창건에 반대해 공직을 고사하고 낙향했던 선조들이 줄곧 터를 잡고 살아왔던 곳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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