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권하는 교육)우후죽순 논술학원…"초교생반도 모집중"

입력 2006-12-26 07:43:21

지난 20일 오후 7시쯤 대구 수성구 C논술전문학원. 2007 대입 논술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수강생과 상담 온 학부모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지난 4월 문을 연 이 곳은 서울에 본원을 둔 체인학원. 서울에서 일부 강사를 공급받고 자료도 본원에서 개발한 자료를 쓰고 있다. 평균 강의료는 월 30만 원 안팎. '옵션(첨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난다고 했다. 10여 명의 서울대 준비반 경우 요즘 하루 7시간 강행군 수업을 한다. 원장은 "논술이 저연령화하면서 현재 수강생 절반이 중학생이고 초등학교 예비6학년 논술반까지 모집하고 있다."면서도 "(논술 열기는)이제 막 불붙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 팽창하는 논술 시장

역시 대구 수성구에서 P논술전문학원을 운영중인 A씨는 "생기는 곳마다 논술학원"이라고 잘라 말했다. P학원도 전국에 체인을 둔 대형 논술학원. 지난해 대구 2개이던 가맹 학원은 1년만에 22개로 늘었다. 지난 5월 문을 연 A씨는 "칠곡, 영천에서도 학생이 온다."면서 "수강생 수도 3배 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통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이달 초 대구시 교육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어 단과를 가르치거나 논술전문 간판을 내건 '국어학원'은 올초 1천2개에서 11월말 현재 1천96곳으로 10%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학원은 3천161개에서 3천240개로 2% 남짓 늘었을 뿐이다. A씨는 "논술이 학원 정식 교과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청에는 국어를 가르친다고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국어학원 치고 논술 안 가르치면 학생이 오겠는가."고 되물었다.

북구는 올들어 대구에서 국어학원 수가 가장 많이 늘었다. 김영순 서부교육청 학원담당은 "특히 칠곡 3지구 중심상가에는 한 빌딩에 5~6개 학원이 들어섰다. 칠곡, 침산동 등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곳이면 어김없이 학원이 문을 연다."고 했다.

지난 5월 칠곡3지구에 논술학원을 개원한 H씨. 서울 강남에서 15년 강사 생활을 했다는 그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서울 메이저 논술학원들이 대구로 대거 몰려오고 있다."면서 "현재 (논술학원들이) 흑자경영은 아니지만 2008년 입시가 피부로 와닿는 내년이 되면 상황이 급반등할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귀띔했다.

논술전문학원이 많이 포진한 곳은 단연 수성구. 올 초 4개에서 10개월만에 15개로 늘었다. 그 중에서도 범어동이 5개로 단연 많다. 지난 달 범어4동에 논술전문학원을 연 B씨는 20년 가량 입시학원을 운영하다 논술 강사겸 원장으로 변신했다. 그는 "하루 평균 20~30장씩 첨삭지도를 하다보니 수면부족에 걸릴 지경"이라며 "알고 지내는 학원 운영자 가운데도 논술학원을 차리려고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논술학원 열풍은 지방에서도 몰아치고 있다. 학원 수가 포항에 육박한다는 구미시. 올 들어 형곡동을 중심으로 논술학원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성대모 구미교육청 학원담당은 "개원 등록을 받아보면 20~30대 젊은 학원장도 흔하다. 예전에는 40대가 주류였는데 요즘에는 대학을 졸업후 1~2년 경력을 쌓고 바로 논술학원으로 옮기거나 개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미는 이미 학원 수가 포화지경인데 논술학원 탓인지 전체 학원 수는 좀체 줄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아예 '논술 학과'를 개설했다. 경일대는 지난 9월 산업대학원 내 교육문화컨텐츠학과에 통합논술교육전공(5학기 과정)을 신설, 14명의 수강생을 받았다. 대부분 논술 과외를 하고 있거나 준비중인 이들이다. 신재기 경일대 교수는 "논술 사교육 시장의 팽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내년에는 통합논술교육연구소를 발족해 대대적인 강사인력 양성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 2007년은 '학교 논술' 원년

사교육 시장이 세(勢)를 키우면서 공교육도 논술교육을 선포했다. 교육부는 지난 달 '논술교육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교과서 개정을 통해 2009학년도부터 국어 교과서에 논술 관련 내용을 대폭 늘리고 각 학교에 교사들로 논술스터디를 구성,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박윤규 대구여고 교사논술 동아리('교화를 딴 유란논술 키우미') 회장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각 과목 7명의 선생님들이 논술수업 모형과 첨삭지도안을 연구하게 될 것"이라며 "교사들이 논술수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학원보다 나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했다.

대구시 교육청이 교사논술 동아리를 공모한 결과 20일까지 모두 65개 동아리가 만들어져 지원을 요청했다. 학교 내 동아리뿐만 아니라 학교 연합 동아리, 교과 연합 동아리 등 다양한 형태다. 시교육청은 이 가운데 46개 동아리를 선정해 내년에 500만 원의 연구활동비를 지원한다. 또 내년에는 논술 교육 우수학교 20개를 선정해 50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학교 논술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최근 대구시 교육청이 5~8개 고교를 하나로 묶어 내년 1월 초까지 한 달 동안 운영하는 '논술마을' 역시 사교육에 치우친 논술교육을 공교육에서 끌어안겠다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방과후학교에서도 논술이 뜨고 있다. 올들어 대부분의 초·중·고교에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글쓰기, 독서, 시사 등 논술 관련 강좌를 열었다. 매월 3만 원 가량의 수강료로 수준별·영역별 논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도원고 석귀화 연구부장은 "내년부터 학교 논술이 본 궤도에 오를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 '붙어보자' 사교육

논술학원 운영자들은 '학교가 논술교육에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학교 논술의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40명 놓고 가르치는 학교와 7~8명 놓고 가르치는 학원이 비교가 되겠습니까. 학원에서는 10명짜리 서울대반을 꾸릴 수 있지만, 각 학교에 이런 학생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수준별 수업이 될 수가 없죠. 결국 학원에 올 수밖에 없습니다."

C 학원장은 학교에서 논술교육이 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했다. 한 예로 교사들이 학원 강사처럼 밤을 새서 첨삭지도를 할 수 있겠냐고 했다. 학원처럼 1천자 원고지 한 장당 1만5천 원을 지급할 수 있냐는 것.

또 다른 학원 관계자는 "인센티브가 없는데 교사들이 움직일 리 만무하다."며 "지금 정부에서 바짝 나서고 있지만 학교 논술교육은 얼마 못 가 시들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공교육 내에서도 일부는 받아들이는 분위기. 그러나 학교의 강점을 살리면 사교육에서 결코 제공할 수 없는 논술 교육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기대가 서서히 일고 있다. 무엇보다 큰 강점은 학교 교사들의 전문성. 최근 '학교에서 논술 이렇게 가르치면 된다'는 교재를 개발한 황영진 대구외고 교사는 "학생들이 여러 교과에서 익힌 지식을 통합할 수 있도록만 도와주면 되지 꼭 학원처럼 할 필요는 없다."며 "그런 측면에서 학교 교사야말로 최적의 강사"라고 했다.

한 40대 윤리 교사도 "자신의 전공만으로는 논술교육에 한계를 느낀 교사들이 개인적으로 통합논술 연수를 받거나 대학 학과에 등록하기도 한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경북대가 내년 여름방학부터 대구 교사들의 논술 연수를 계획한 것도 이런 '긍정론'에 힘을 싣고 있다. 황석근 사범대학장은 "마치 논술이 성역에 있는 것처럼 일부 대학과 사교육 시장이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정상적으로 학교 수업을 받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 대입 논술"이라고 했다.

한 학원 강사도 "학원 수업을 전혀 듣지 않은 한 지방 여고생은 수업 첫 시간에 고려대 기출문제를 받고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는데, 불과 보름만에 따라잡더라."면서 "결국 학교 공부를 잘 하면 논술도 잘 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윤일현 송원학원 진학지도실장은 "지난해 서울대 입시에서 10명 중 2명이 논술 때문에 당락이 뒤바뀌었다고 하는데 이는 논술 전단계 전형에서 소수점 단위로 차이 나는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분량을 턱없이 못 채웠거나 논제를 잘못 이해하고 엉뚱한 답안을 쓰지 않는 한 합격이 충분한 점수대 학생이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논술의 형식적인 기교를 익히는 시간에 교과서적인 기본 개념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이 수능과 내신, 논술을 동시에 대비하는 요령"이라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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