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외국인 노동자에도 사랑을

입력 2006-12-18 11:45:15

이제 성탄절도 한 주일 남았다. 가톨릭교회가 매년 성탄 1주일 전 이 무렵을 慈善主日(자선주일)로 정해 나눔의 정신을 호소해온 지도 올해로 22년째, 올해는 살림살이가 유난히 힘겹다는데도 이웃사랑의 온정은 메마르지 않는 것 같다.

지난주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는 20대 처녀 사연이 보도된 뒤 2천만 원이 넘는 성금이 전달되거나 백혈병 소년의 기사가 나간 뒤 2천 700만 원의 수술비가 모였다는 소식들이 세모의 추위를 훈훈하게 녹여주는 것 같아서다. 사실 한두 번도 아니고 거의 매주 '이웃사랑' 이야기가 보도될 때마다 좁은 우리 지역(대구'경북) 안에서 매번 2천만 원이 넘는 성금들이 모인다는 것은 예사롭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600만 대구'경북 시도민 모두가 굳이 자선주일이 아니어도 언제나 가슴이 따뜻한 이웃들인 셈이다.

그런 自矜心(자긍심) 속에 어느 신부님이 한 가지 바람을 기도로 호소하고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열심히 살아보려다 병마로 쓰러진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똑같은 베풂과 사랑을 나눠줬으면 하는 기도다. 자신이 병마에 쓰러지면 필리핀 가난한 섬에 두고 온 어머니와 세 동생, 여섯 명의 조카들이 굶어야 하는 서른네 살 필리핀 노동자 로드실 씨 경우 한국인 백혈병 환자와 똑같이 딱한 사정이 보도됐지만 성금은 많이 모자라 있다.

얼마 전 카자흐스탄 노동자의 사연이 보도됐을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외국인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사정이 덜 안타까워서였을까.

따뜻한 우리 지역의 이웃들이 나눔의 온정에 차별을 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나 歸化(귀화)외국인 복지 정책이나 수용 태도가 알게 모르게 국민정서 속에 영향을 끼친 탓이란 생각도 해보게 된다.

가장 오래된 중국 華僑(화교)들에 대한 정부의 복지 정책만 해도 온정과 포용보다는 배타와 냉대적 차별 쪽이다.

아직도 서비스업 취업 규제로 음식점 관광상품 판매소 등에 중국인 종업원 채용을 금지시키고 수십 년간 세금까지 낸 영주권자 화교 등에게 벤처 창업자금 신청도 제한할 정도다.

그 냉대가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역풍이 돼 우리 경제와 관광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외국인'화교 냉대 정책으로 '차이나타운'이 생겨나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3천만 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은 자기네 먹을거리가 있는 차이나타운을 찾아 캐나다 밴쿠버나 도쿄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으로 빠져나간다. 한국엔 고작 연간 80여만 명이 오갈 뿐이다. 2조 원이 넘는 화교 자본도 화교를 챙겨주는 일본 등으로만 빠져나간다. 그런 부작용은 당장 차이나타운 조성으로 중국 관광객 유치와 화교 자본 외자를 끌어오려 했던 群山(군산)시, 고양시, 인천시, 全州(전주)시 등 지자체들로 하여금 잇달아 쓴 잔을 들게 했다. 남에게 베풀어야 나도 얻을 수 있는 나눔의 이치를 팽개친 업보다.

우리 先代(선대)의 지도자들은 왕조시대에도 우리 땅에 살러온 외국인이나 귀화인에게는 어질게 베풀어 주고 포용했다. 우리 민족성이 본디 그러했다. 조선조 戊寅年(무인년) 7월 당시 司諫(사간)의 기록에 의하면 '중국인에게는 부역과 세금을 부당히 매기는 일이 많아 홀로 길모퉁이에서 원망을 품고 탄식하나니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하여 이에 임금이 중국의 兵部尙書(병부상서) 劉(유)씨 자손들이 사는 곳에는 중국인의 세금을 감면하고 무역이나 軍役(군역)도 면해주도록 하라는 첩지를 내리고 이를 어기는 고을 수령은 처벌하도록 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우리나라에 살러온 외국인을 矜恤(긍휼)히 여기고 어질게 베풀었다.

성탄 자선주일에 우리 모두 옛 선조들이 그랬듯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같은 몫의 사랑을 나눠주는 성탄이 됐으면 더 따뜻한 歲暮(세모)가 되지 않을까.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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