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모방犯罪

입력 2006-12-16 10:54:40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국에서 일어난 진통제 타이레놀 복용 사망 사건은 模倣犯罪(모방범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말해준다. 1982년 시카고에서 이 진통제를 사 먹은 사람 8명이 한꺼번에 사망했다. 가게에 진열된 이 약병에 독극물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한 달 동안 미국 전역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경찰이 진상을 찾아 나선 결과 그중 상당수가 모방범죄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경비가 삼엄한 군부대에 초병을 살해하고 침투해 무기를 훔치거나 武裝(무장)해 은행 금고 털이를 한 사건 등이 몇 차례 이어졌다. 알고 보니 대학 재학생과 휴학생들이 할리우드 갱 영화 '히트'를 보고 저지른 모방범죄였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모방심리가 작동돼 일어나 사건들이었다. 요즘 영화 속의 폭력이 갈수록 잔혹해지고 있는 점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거짓 拉致(납치) 협박 사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경남 진주와 울산, 제주에 이어 서울에서도 비슷한 모방범죄가 발생했다. 아들을 납치했으니 돈 500만 원을 보내라는 협박 전화를 받고 범인이 불러준 은행계좌로 송금한 뒤 집으로 전화하니 중학교 1학년 아들은 멀쩡하게 집에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친구 보증을 섰는데 친구가 빚을 안 갚아 납치됐다는 가짜 아들의 전화 목소리에 속아 넘어간 경우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다른 사람에게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手信號(수신호)를 한 뒤 송금하고, 경찰은 곧바로 계좌 지급 정지 조치를 했다. 그러나 이미 현금 260만원이 빠져나간 뒤였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수법의 모방범죄가 전국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지만 경찰의 공조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구역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이 일고 있기도 하다.

◇'접속의 시대'로도 불리는 현대사회는 더불어 살 필요성을 점점 커지게 한다. 누구나 영향을 받고 주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을 모델로 삼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영향을 받은 다른 사람을 달라지게 하기도 한다. 특히 感受性(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은 더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가 나쁜 모델을 자주 보여줘 모방범죄를 부추기는 게 아닌지 자성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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