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제도적 교육에는 福祉(복지)와 投資(투자)라는 양면적 동기가 내재해 있다. 복지로서의 교육은 국민으로 하여금 지식·규범·기술 등을 익히게 하여 더욱 질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봉사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반면에 투자로서의 교육은 국민의 지력·기능·심성 등의 잠재력을 계발하여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충원하고 안위와 번영의 역량을 마련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대체적으로 하급학교일수록 복지적 동기가 우선하고 상급학교일수록 투자적 동기가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복지적 동기에 의해서 창출되는 교육기회의 분배에는 일차적으로 평등주의가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투자적 동기에 의해서 창출된 교육기회는 사회적 투자의 효율성을 예견할 수 있게 하는 잠재력의 소유자에게 주어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것이다.
우리 교육의 고질적 질병으로 되어 있는 대입정책의 난맥상도 투자로서의 고등교육과 복지로서의 보통교육의 사이에서 생기는 기능적 상충이 문제로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대학의 능력주의적 선발제도는 교육의 복지적 가치를 누구나 수혜토록 하려는 하급학교의 평등주의적 교육운영과 불가피하게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즉 경쟁의 원리와 분배의 원리가 충돌한다.
오늘의 중등교육은 30년 혹은 40년 전과는 달리 성격상 보통교육이며 특징적으로 복지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하는 젊은이들은 상급학교의 문전에서 벌어지는 격심한 경쟁을 경험해야 한다. 말하자면 능력주의적 경쟁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 경쟁의 분위기가 아래 수준에서까지 형성된다면 극단의 경우에 보통교육은 전반적으로 황폐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선발제도의 구상에서 투자적 성격만을 들어 대학의 전적인 자율성을 고집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에서의 경쟁의 개념은 다른 맥락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즉, 교육받는 어린 젊은이들을 경쟁 속에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교육 담당자들이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한 경쟁을 하도록 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수요자의 경쟁이 아니라 공급자의 경쟁이다. 교육 서비스의 공급자 측에 적용되는 경쟁체제는 투자적 목적으로나 복지적 목적으로나 교육의 질적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대하여 흔히 '신자유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수요자 중심의 정책과 교육 서비스의 경쟁체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수요자의 선택과 시장적 경쟁이 효율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수요자의 선택이 없는 체제에서는 경쟁의 원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택은 대상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교육기관의 건학이념, 교육과정의 조직과 운영, 학습의 내용과 경험이 다양해야만 선택이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고객을 유치하지 못한 공급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으므로 어떠한 치열한 경쟁도 불사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교육 서비스는 질적으로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기대에 의한 정책적 계획을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시나리오'라고 하자.
어쩌면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 거역할 수 없는 대세 속에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환상의 이면에는 심각한 우려의 눈이 주시하고 있다. 시장의 논리가 본격적으로 지배하면, 그것은 교육의 상품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 프로그램, 교원이 모두 상품화된다.
과대선전이나 가격담합과 같은 상품시장의 부조리가 교육세계에 일반화될 수도 있다. 또한 교육장의 시장화는 교육수혜의 富益富(부익부) 貧益貧(빈익빈) 현상을 초래할 수 있고, 경쟁풍토는 전통적 교육공동체의 해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정당화는 경쟁에 의한 질 관리보다 교육수요자의 선택적 폭을 확대한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선택가능성이 획일적 평등보다는 민주적이고 생산적이다. 그러나 선택 폭의 확대는 경쟁체제의 구축, 어쩌면 자칫 악성적 경쟁체제로도 이어지는 것이므로, 신자유주의적 시나리오는 '환상적 기대'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수반하는 역기능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이돈희(민족사관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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