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주변 예술의 이해

입력 2006-12-11 07:45:31

나의 하루는 향교에 나가 고전을 강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벌써 20여년이나 반복되는 일상임에도 그 때나 지금이나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힘들다. 특히 겨울이 되면 새벽녘에 따뜻한 방바닥을 벗어나 살을 에는 한기를 느끼며 캄캄한 어둠을 헤쳐가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여전히 이른 새벽에 깨어나 향교로 향한다.

새벽에 향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아직 젊어 보이는 사람도 끼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평생을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다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셨으니 편안하게 쉰다고 한들 이 세상 누구보다 떳떳할 수 있는 분들임에도 활기차게 새벽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향교에 모인 사람들은 성현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이로써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성현의 말씀을 통하여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한다.

"재물이 있으면 가정이 윤택하고, 덕이 있으면 마음이 윤택해진다."는 경서의 내용처럼 무엇을 섭취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다르게 나타난다. 마음을 기른다는 것은 의식을 깨우고 삶의 공간을 넓히는 가장 소중한 바탕이다.

그릇이 크고 견실하면 그 속에 무엇을 담아도 넘치거나 깨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릇만 있고, 그 속에 담을 내용이 없다면 이 역시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크고 아름다운 그릇에 알찬 내용을 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영역에 몰두하여 확고한 전문성을 획득하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의 크기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자기 영역에만 집착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의식이 편협해지기 쉽다. 내 것만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그릇을 좁히는 일이며,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니 그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어떤 분야의 예술이든 아름다움의 본질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다만 그 대상과 방식이 다를 뿐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자를 이해하는 것이다. 주변예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다.

사공홍주(한국문인화협회 대구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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