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익부 빈익빈'…재래시장 현대화의 '명암'

입력 2006-12-09 08:59:11

재래시장마다 '현대화' 바람이다. 지난 2002년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난 뒤부터다.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통해 재래시장 시설현대화와 재건축 정비사업 지원을 약속하자 너도 나도 현대화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는 것. 그러나 현대화 바람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설 현대화와 관련된 총 사업비의 10%를 상인들이 자체 투자해야 한다는 관련 규정때문에 재래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불러오고, 재건축 정비 사업에서도 낮은 사업성과 내부 갈등 때문에 일부에서는 잡음도 나오고 있다.

◇시설 현대화의 양면

8일 오전 대구 북구 팔달신시장. 길이 370m, 높이 13m, 폭 12m의 아케이드는 웅장했다. 시어머니와 장을 보러 나온 이선화(34) 씨는 "동네 명물이나 마찬가지"라며 "보기에도 좋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맘 편히 재래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맘에 든다."고 했다.

상인들도 자랑스럽기는 마찬가지. "우리 아케이드 성능은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다른 아케이드보다 훨씬 높아 쇼핑하기에 그만이고, 지붕 마감재는 온도를 떨어뜨리는 특수 코팅 처리까지 했어요. 덕분에 올해는 가장 시원한 여름을 보냈습니다." 이정오 상인회장은 "시설 현대화 이후 상인들의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며 "내년 초 정부의 모범시장 지정에 응모하기 위해 중소기업청 상인대학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 3기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7월 말 현재 대구지역 재래시장 133곳 중 시설 현대화 지원 사업을 신청한 시장은 28곳에 그쳤다. 지난 5년간 28곳의 재래시장이 현대화 공사에 한창일 때 다른 105곳은 전혀 변화가 없던 셈이다.

이와 관련, 많은 재래시장은 "총 사업비의 10%는 반드시 자체 투자해야 하는 관련 규정이 대구 재래시장 현대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팔당신시장 상인회 측은 "사업비 10%를 마을금고에서 무상 지원받지 않았다면 시설 현대화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라며 "영세하지만 가능성 있는 시장에는 정부가 좀 더 전폭적으로 지원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소기업청과 지자체의 재래시장 담당들은 "상인들의 자체 개선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나라와 지자체에서 90%를 지원하는 데도 10%의 투자조차 꺼린다면 의지가 없다고밖에 볼 수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재건축 정비 사업의 양면

대구 수성구의 한 재래시장. 전체 점포의 10% 이상이 비어 있었지만 매매가 되지 않고 있다. 재건축 소문이 돌면서 더 이상 임대를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점포 주인은 "올해 초부터 주변 주택가의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시장에서도 주택재개발에 맞춘 시장 정비사업 회의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며 "올해 안으로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했다. 현행 도시계획상 재래시장이 위치한 곳은 준주거 또는 상업지역으로, 용적률이 일반 주거지역보다 훨씬 높아 주상복합아파트 재건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정부도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통해 정비사업 조합에 최대 100억 원까지 융자 지원하기 때문에 정비사업 추진 여건도 좋은 것.

대구의 경우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높은 수성구 재래시장들이 다른 곳보다 재건축 열기가 뜨거운 상태다. 실제 수성구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3곳의 재래시장이 재건축 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그 중 한 곳은 대구시 정비사업 시행 구역 선정을 통과해 시공사와 협상중이다.

그러나 재래시장 재건축 정비 사업은 일반 아파트에 비해 한계와 내부 갈등도 크다.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사업성. 1천~2천 평 안팎의 면적으로는 주상복합아파트 한 두 동 밖에 짓지 못해 분양 수입이 많지 않은 것.

한 재래시장 재건축 조합장은 "상인들은 많은 보상비를 원하는데 시행사는 낮은 사업성을 들어 어떻게든 보상비를 낮추려 한다."며 "1, 2평 점포주들이 많아 조합원간 이해 관계도 복잡하다."고 전했다.

면적이 넓고, 용적률이 높을수록 사업성이 크지만 대구의 재래시장 중 이에 적합한 사업부지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조합원 내부 갈등이 심해 재래시장 재건축 사업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대구에서 시행 구역에 선정되거나 추진위원회를 결성한 곳이 각각 7곳, 5곳이지만 앞으로의 사업 추진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대구시와 구·군청의 재래시장 담당자들은 "현대화에 소외된 재래시장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시장의 자체 투자 등 자구 노력과 조합원 간의 양보, 이해를 통해 재래시장을 다시 살리는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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