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르포 낙동강] (17)철새 기착지 중류지역

입력 2006-12-08 07:07:13

구미시 해평면 성수리 낙동강변을 거닐어 본다. 강바람이 차갑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 우중충한 잿빛 풍경, 거친 모래뻘... 모든게 황량하다. 그저 무심하게 흘러가는 강물만 바라보고 서있을 수밖에.

'꾸룩 꾸룩 꾸룩~'. 저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시끄러운 소리. 고개를 드니 수천마리의 쇠기러기가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많아도 저렇게 많을까. 새들은 떼 지어 '한일자(一)'를 그리기도 했고 '화살표(→)'모양을 만들면서 이러저리 비행했다. 하늘에서 급강하해 강물을 스치듯 다시 날아오른다. 그들에게서 무한한 자유가 느껴진다. 공군의 에어쇼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장관(壯觀)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 모양이다.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낙동강 중류지역은 철새들이 긴 여행을 하다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4만평에 이르는 널다란 하천 유역과 모래언덕(沙丘)이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천적에게서 안전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구미 해평습지, 대구 달성습지가 대표적인 중간 기착지다. 봄·가을철 시베리아, 중국 북부지역 등에서 날아온 두루미, 오리, 기러기 떼가 하루에서 며칠씩 묵고가는 곳이다. 일부는 월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낙동강에서 관찰할 수 있는 철새는 300여종. 하류지역인 주남저수지, 우포늪, 부산 을숙도에서 100여종이 월동을 하지만 상당수는 따뜻한 일본 큐슈지역으로 간다.

◆두루미 가족

철새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천연기념물 흑두루미와 재두루미다. (흑두루미는 몸통 색깔이 검은 보호색이고, 재두루미는 진한 회색이다.) 긴 다리와 긴 날개, 긴 목을 가진 우아하고 아름다운 새다. 오죽하면 이들의 몸짓을 학(鶴)춤이라고 불렀을까.

이들은 매년 가을철 터전인 시베리아아무르강, 우수리강 유역부터 일본 큐슈 이즈미시까지 5천km의 긴 여행을 떠난다.

한반도를 지나려면 한강 하구에서 하룻밤 자고 200km 떨어진 낙동강 중류지역인 구미시 해평면 인근에서 다음날 숙영을 하는 것이 정상 코스다. 두루미는 태양열로 데워진 상승기류를 이용해 이동하기 때문에 밤이 되면 육지에 내려앉아 쉬고 갈 수밖에 없다. 시속 30~40km로 하루 180~240km를 날아가는 두루미에게 해평은 적합한 숙박 환경을 갖고 있다. 최종 목적지인 일본 이즈미시에서 월동하는 8천여마리 상당수는 구미 해평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고 보면 된다.

모두 일본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낙동강 중류에서 월동하는 두루미 수도 적지 않았지만 요즘들어 그 수가 상당수 줄었다. 대구 달성습지(고령군 다산면, 대구시 달서구 파호동)에 1986년에 179~182마리가 월동했고 1996년까지 매년 200~500마리가 겨울을 지냈다. 그후에는 두루미 가족은 이곳을 중간 기착지로 이용할 뿐이다. 고령군 다산면에 비닐하우스가 대거 들어서고 강변 인근이 농경지로 변하면서 월동지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

◆구미 해평도 위험하다.

구미 해평도 점차 대구 달성습지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듯 하다. 두루미의 서식처가 계속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 해평이 두루미의 중간 기착지라고 밝혀진 것도 1998년 이후다. 그해 3월 재두루미가 농약중독으로 떼죽음 당한 이후 구미시와 환경단체들이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두루미가 중간 기착지를 대구 달성습지에서 구미 해평으로 옮겼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최근에는 2002년부터 매년 5~19마리 정도의 두루미 가족이 선산읍 독동리 지역에서 월동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주변에 널려있는 비닐하우스, 농경지로 변한 해평습지, 콘크리화된 둔치... 거기다 2009년까지 계속되는 하천정비 공사로 인해 포클레인 소리마저 요란하다.

김수경(교원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조류학)씨는 "일본은 전염병을 우려해 이즈미시에 몰려드는 두루미떼를 분산시키는데 여기서 흩어진 두루미 떼를 받아 들이기에는 구미 해평이 가장 낫다"면서도 "갈수록 환경이 척박해져 두루미 떼가 다른 곳으로 옮겨갈까 걱정"이라고 했다.

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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