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그 빛과 흐름'展 함께 여는 바르나바 수녀-배종호씨

입력 2006-12-01 07:05:07

"수도자의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사진은 찍지 않으렵니다."

4일부터 12일까지 갤러리 쁘라도(053~602-7311)에서 열리는 '그 빛과 흐름'전에 앞서 파티마병원 요셉관 1층 로비에서 열리는 사전 공개 자리에서 만난 바르나바(본명 배정숙) 수녀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취미삼아 한 일인데 뭘 그리 호들갑이냐?"며 오히려 기자에게 핀잔까지 줬다.

"누님께서 안하시려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세한 얘기도 안했는데…." 동생 배종호(47) 씨의 변명(?)도 그랬다. 할 수 없이 배 씨를 통해 이번 전시회와 남매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번 전시회가 1997년 이후 네 번째 전시회지만 누이와 함께하는 자리여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했다.

바르나바 수녀는 7남매 중 맏이, 배 씨는 네 째였다. 열한 살 터울, 배 씨에게 바르나바 수녀는 "부모님 다음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한 사람으로 요셉관 건축을 주도하는 등 수도회 살림살이에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일 만큼 많은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남매가 모두 미술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님과 저뿐이지만..." '언제부터 작업을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배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님은 원래 조각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짬을 내기 힘든 목조각 대신 택한 취미가 양초 공예였지요. 처음에는 시제품에 시를 써넣는 정도로 시작했는데, 그러던 것이 손에 익자 조금 더 욕심을 냈습니다. 직접 양초를 만들고 이를 깎아내고 다양한 무늬를 새겨넣었어요. 타고난 재능으로 금방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양초 작품은 배 씨의 말대로 "불 켜기가 아까울 정도"의 명작이다. 기존 향초 중심의 양초 공예가 아니라 수도자의 염원을 담아낸 성물(聖物)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가운데 십자가의 길 14처나 사도 휘장 등 복잡한 문양과 봉밀을 이용한 작품 등에선 범상치 않은 안목과 손맛이 느껴진다. 국내에 재료가 없어 외국에서 구해온 것도 많다.

배 씨에 따르면 1998년 첫 전시회 때 사람들이 서로 사가려고 해 싸움이 날까 싶어 판매는 안하기로 했다고 할 정도이다(바르나바 수녀의 작품은 판매용이 아니라 귀한 손님을 위한 선물용으로만 쓰이고 있다). 바르나바 수녀가 '제 살을 태워 이웃에 빛을 밝히는 양초처럼' 수도하는 자세로 작업한 결과물인 것이다.

이런 누이와의 전시라서 "내 작품이 죽을까 두렵다."고 배 씨는 한 마디 던졌다. 누이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그의 표정에선 시종 누이에 대한 존경심과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사실 자신의 작가적인 인생도 평범하지는 않다.

배 씨는 실제 서양화를 전공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밥벌이로 건설 조감도를 그리며 붓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을 뿐이다. 화가로서 그의 인생은 1990년대 초반, 마흔 살이 훨씬 넘어서 시작됐다. 발육이 뒤떨어진 왼쪽 반신 근육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등산하러 다니던 어느 날 '지리산 풍경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정도 지리산을 오르며 갈 때마다 파괴되는 지리산의 계곡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망으로 회화 작업을 시작한 배 씨는 5년 간 준비한 끝에 1997년 첫 전시회를 열었다. 독특한 필치로 그려낸 지리산 곡(谷)의 대작에 사람들이 호응했다. 그는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당시의 감회를 떠올렸다. 이후 작업을 쉬지 않고 '힘들게' 4번째 전시회까지 온 배 씨는 "그동안 수도자처럼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털어놓는다. 경건하게 열심히 살아온 그의 모습이 누님인 바르나바 수녀의 삶과 닮아있는 부분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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