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들, 온돌 아닌 침대 사용했다"

입력 2006-11-29 10:26:01

수원대 양정석 교수 연구

"신라인들은 온돌 대신 침대를 썼다."

수원대 양정석 교수는 신라인의 신분별 각종 건축 규제 사항을 담고 있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雜志) 2의 '옥사'(屋舍) 관련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신라인들은 온돌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침대를 썼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양 교수는 이같은 연구 성과를 30일 오후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리는 제28회 신라문화제 학술발표회를 통해 발표한다. 양 교수는 '왕경인의 주거공간 : 삼국사기 옥사 조(條)와 왕경(王京) 유적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왕족을 제외한 신라의 최고 신분인 진골과 그 다음 신분인 육두품 계층에 대한 건축 관련 규제 항목에서 상(床), 즉 침상에 관한 기술이 보이고 있음을 주목했다.

"진골은 침상을 대모나 침향목으로 꾸미지 못하며, 육두품은 대모나 자단, 침향, 그리고 회양목을 침상 장식으로 쓰지 못했다"는 기술이 그것이다.

양 교수는 "당시 신라인들은 방바닥에 직접 앉거나 잠자지 않았으며 침대나 기대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건물 바닥에는 널마루나 온돌 등을 깔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한편 "신분별 건축 규제 사항을 담은 삼국사기 옥사 관련 기록이 신라 흥덕왕 9년(834)에 공포된 법령에 기초를 둔 것임은 의심할 수 없으나, 사실상 부분적인 실행에 그치거나 실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진, 혹독한 가뭄과 연이은 기근, 그리고 도적과 전염병의 창궐 등과 같은 국가적 위기 국면에 직면해 검소함을 강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던 흥덕왕이 때마침 당나라 문종 태화 6년(831)에 발효된 검박령(儉朴令)을 모델로 삼아 들고 나온 것이 각 신분별 옥사나 거기(수레), 기용(器用) 등의 사치 규제 법률이었다는 것이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또 ▷왕경인의 의(衣)생활(단국대 고부자) ▷신라인의 놀이형태에 관한 고찰(동국대 김성혜) ▷목간으로 본 신라왕경인의 문자생활(동국대 윤선태)이 발표된다.

경주·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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