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 싸가지

입력 2006-11-29 07:32:26

TV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싸가지' 캐릭터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여성 주인공은 거액 유산의 상속녀로서 한마디로 대책없는 여자다. 아무에게나 반말을 해대고 하인부리듯 하며 "꼬라지 하고는~"이란 말로 면박주기 일쑤다. 오만방자에 안하무인,유아독존, 개념상실, 예의상실, 체면상실…. 뜻밖의 기억상실로 인해 사는 처지가 완전히 달라졌어도 못돼먹은 성격은 그대로다. 타인에 대한 예의나 배려, 겸양의 미덕은 약에 쓸려야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다(아주 가끔은 연민을 갖게도 하지만).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이 대책없는 '왕싸가지'에 환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마음 속으로는 하고 싶어도 체면 때문에 감히 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그녀를 보면 속이 시원해진다는게 이유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싸가지'는 '싹수'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는 속담의 '될성부른'과 '싸가지'를 같은 선상에 놓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싸가지가 있다'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지만 '싸가지 없다'는 말은 싹수가 노랗다는 말과 어금버금하다. 하지만 싸가지라는 말이 워낙 부정적으로 쓰이다보니 '前轍(전철)'의 경우처럼 무조건 좋지 않은 어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그런지 몰라도 싸가지들이 부쩍 많아지는 느낌이다. 하도 많다보니 요즘은 이를 빗대어 '네가지'로도 부른다. 귀여운 싸가지에서부터 못된 구석은 없지만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기 일쑤인 '대략난감형' 싸가지, 언제 어디서나 싸가지 코드로 일관하는 왕싸가지, 기네스북 감에 딱 맞을만한 슈퍼 왕싸가지….

그런데 우습게도 싸가지들이 정작 자신은 싸가지인줄 잘 모른다. 하는 짓마다 '네가지'결핍인데도 자신은 쿨(cool)한 사람으로 착각한다. 싸가지가 다른 싸가지를 싸가지 없다며 흉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제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작은 티는 트집잡는게 바로 우리다.

드라마 속의 싸가지는 때로 귀여운 구석이라도 있지만 자기 주변의 누군가가 못말릴 왕싸가지라면, 정말이지 골치아픈 노릇이다. 아차, 나는 혹…?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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